일상이 된 e커머스…관련법 현실 반영 못해
책임소재 규명은 후순위…피해구제 선행돼야
[세종=뉴스핌] 백승은 기자 = "이런 일은 그동안 본 적이 없다. 초유의 사태다."
한 고위급 공무원에게 위메프·티몬의 판매대금 정산 지연과 비슷한 사건이 있었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와 어느 정도 공통점은 있지만,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e커머스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온도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백승은 경제부 기자 |
실제로 국내 소비자에게 e커머스는 일상이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 e커머스 거래 규모는 25조원에 불과했지만 작년 10배 가까이 성장한 227조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유통 매출 비중의 50.5%로 오프라인을 뛰어넘었다.
국민 두명 중 한명은 e커머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법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은 대기업 유통사는 상품 판매 마지막 날 기준 40~60일 내 대금을 정산하라고 규정한다.
e커머스는 법망에서 제외다. 대금 결제 기한을 법에서 따로 규정하지 않아 정산 주기가 들쑥날쑥하다. 판매자에게 가야 할 대금을 e커머스 플랫폼이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고 해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한국소비자원은 내달부터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받겠다고 발표했지만 집단분쟁조정은 권고 사항에 불과할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 사업자나 피해자 중 한쪽이라도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성립된다. 실제 머지포인트 사태 당시에도 사업자가 조정안을 거부해 피해자에게 돌아간 환급금은 '0원'이었다.
일각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무리한 기업결합 승인을 비판하기도 했다. 큐텐은 몸집을 부풀리기 위해 지난 2022년 9월 티몬을 시작으로 작년 3월 인터파크 커머스, 4월 위메프 등을 인수했다. 관련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경쟁제한성에 문제가 없어 조건 없이 승인했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태가 정부의 허술한 규제에 눈덩이처럼 커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사태의 책임 소지를 가려내는 것은 후순위다. 피해를 본 소비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먼저다.
사태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후 5일 만인 29일 정부는 대안을 내놨다. 소비자 피해 방지를 위해 여행사·카드사,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사)와 협조해 카드결제 취소 등 환불 처리를 지원하고,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 긴급경영안정자금 등 56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게 골자다.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면 피해는 언제나 취약 계층에게 가장 많이 몰리는 법이다. 2100억원으로 추산되는 미정산 금액이 앞으로 더 불어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특히 소상공인과 소비자의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전자상거래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관련 법령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도 확실히 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사태를 발판으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안을 뜯어보고 명확한 구제책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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