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증거인멸의 고의가 명백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려워"
2심 "하도급법 위반 형사사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지난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하도급법 위반 조사에 대비해 관련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2부(강희석 조은아 곽정한 부장판사)는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현대중공업 임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직원 B씨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사진=뉴스핌DB] |
앞서 이들은 지난 2018년 7~8월 경 공정위의 하도급법 위반 직권조사 및 고용노동부의 파견법 위반 수사에 대비해 관련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A씨 등은 회사 임직원들이 사용하는 PC 102대와 하드디스크 273대를 교체해 하도급법 위반 및 파견법 위반 관련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1심 재판부는 "당시 공정위가 조사 대상을 검찰에 고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고 피고인들의 행위와 공정위 고발 사이에는 1년이 넘는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며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에게 증거인멸의 고의가 명백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려워 증거인멸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증거인멸 행위에는 아직 수사절차가 개시되기 전이라도 장차 형사사건이 될 수 있는 것까지 포함된다"며 "피고인들은 하도급법 위반 관련 공정위가 직권조사를 거쳐 검찰에 고발하는 등으로 장차 형사사건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알면서도 증거인멸 행위에 나아간 것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하도급법 관련 사항을 포함하는 협력사 법률문제 사전예방 및 대응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장 및 담당임원으로서 협력사들의 지속적인 신고와 언론보도가 증가하며 사회적 이슈가 됨에 따라 공정위가 강도 높은 조사와 제재를 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고 이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봤다.
이어 "서면발급의무 위반,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등 하도급법 위반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이에 대해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이 사건 행위에 나아간 이상 그 주된 목적이 공정위 조사에 대비했다고 하여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다는 인식과 의사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의 행위는 공정위 고발사건에 관한 증거인멸교사 및 증거인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피고인들의 고의도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