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수빈 기자 = 숭례문이 타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몇 시간이지만 다시 세우는 데는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공든 탑도 무너진다. 뭐든 쌓아올리는 건 길고 지난한 시간을 요하지만 무너지는 건 딱 한 순간이면 된다. 지난 4일 밤에 있었던 비상계엄 사태로 산업계는 얼마나 더 긴 시간을 비용으로 치러야 할 지 막막해졌다.
[서울=뉴스핌] 조수빈 기자 2024.12.06 beans@newspim.com |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장 먼저 만난 한 재계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내년 초 도널드 트럼프 2기도 어떻게 될 지 몰라 비상경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맞이한 계엄 시국이 꿈인가 생신가 싶다는 설명이다.
계엄이 해제된 날 아침부터 재계 임원들이 모여 비상회의를 했다. 이미 여러 경제 지표들이 내년 한구 경제의 저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내년 성장률을 1.9%로, 내후년 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이번 비상계엄이 내수 장기화의 입구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기업들의 등을 떠민 형국이 된 것이다.
내수가 주춤한다면 기업은 수출 다변화 등 해외 진출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그리고 수출의 물꼬는 그 나라의 외교력이 좌우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증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지 않은 것은 계엄선포의 영향력이 미미해서가 아니라 그간 쌓아둔 대한민국 경제의 신뢰가 가까스로 버팀목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문제는 계엄선포로 대외 신인도가 하락한 대한민국의 수출 경쟁력이 지금보다 얼마나 높아질 수 있느냐다. 전문가들은 비상계엄 사태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답했지만 시야가 너무 단기적인 것은 아닌가. 이미 외교 일정이 미뤄지면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수출 구조를 고려하면 너무 안일한 분석이라고 느껴진다.
모두의 눈이 쏠린 곳은 미국과의 관계다. 이미 관계의 균열은 보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도 방한을 취소했고 한·미 국방 당국이 4~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하려던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도 연기됐다.
트럼프 당선인이 정식으로 임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스킨십을 강화해야 할 시기, 외교적 공백은 뼈아프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일본과 네덜란드가 빠지고 한국이 포함된 것은 외교 공백이 벌써 수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또한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대왕고래 프로젝트, 체코 원전 수출 등도 내년 좌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기업들도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출력 강화를 위해 국가별 파트너십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된 셈이다. 해외 국빈들 역시도 방한 일정을 취소하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기업을 돌아 보기 위해 방문한 국빈들이 계엄 상황을 '직관'하게 만들었으니 기업 입장도 참 민망하다.
깊어지는 내수 침체에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여러가지 지원 법안도 표류하게 됐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반도체특별법, 중국재 철강에 대한 반덤핑 해결, 전기차 및 배터리 보조금 유지 등 국내 수출 업종들의 문제가 하나씩 다 걸려있다. 산업에 관련된 법들은 탄핵 정국에 휘말리지 않고 기업의 의견을 들어 속도를 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내각의 역할이 막중한 상황, 경제계는 빠르게 자신의 자리와 속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한 번의 밤이었지만 재계는 며칠 내내 머리를 싸매고 있다. 무너진 것은 하루로 충분하니 합심해서 쌓아올릴 것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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