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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항일 영웅 양세봉, 잊지 말아야 할 양시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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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잊지 말아야 할 양시봉

이제 더 중요한 점은 양세봉 장군의 동생 양시봉에 대한 평가라는 점이다. 양세봉은 그나마 남북이 기리는 항일 영웅이지만, 동생 양시봉은 역사 속에서 은폐된 독립군이기 때문이다. 형 양세봉이 가장으로서 생계를 걱정하며 머뭇거릴 때, 양시봉이 나서서 자신이 집안을 책임지겠으니 마음 놓고 독립군 활동을 하라고 밀어주었다.

양세봉과 독립군들이 마을로 내려올 때마다 일본 측의 동향을 살피는 일, 독립군에 군량과 자금을 공급하는 일, 총을 숨기고 공급하는 일, 독립군들의 옷과 양말 등 군수물자 등을 제공하는 일은 양시봉이 맡았다. 청원현 공안국의 조직도에는 양시봉이 한국독립당 동북지당 청원지역의 재무부장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는 그가 자금과 군수물자 등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양세봉 기념공원 가족사진. 앞 좌1 양의찬, 좌2 양의관, 좌3 양철수, 좌4 김봉련, 좌5 양정봉, 좌6 둘째아들 양동섭. 둘째줄 양시봉 딸 양의복 부부.[사진=정연수 박사] 2025.03.10 onemoregive@newspim.com

양세봉을 오래도록 연구한 차오웬치(曹文奇)는 "1932년 8월 청원현성을 공격하기 전에 양세봉은 비밀리에 청원현 교외에서 살고 있는 동생 양시봉에게 연락원을 보내 청원현에 있는 일본군, 괴뢰군, 주둔군의 군사배치, 화력, 무기 상황과 지형, 지도 등을 제공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양시봉은 김성산, 이영준에게 부탁하여 일본군의 주둔 현황에 대하여 정밀한 조사를 진행한 후에 이영준에게 군사지형, 지도를 그리도록 했다. 그 후에 양시봉은 아내 김화순을 통해 목숨을 걸고 중요한 정보를 양세봉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이는 요녕민중자위군이 청원현을 진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항일명장 량세봉』, 193쪽)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군이 물러가고 중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양시봉은 '민족주의 분자'로 몰려 청원현 감옥에 갇히고, 중국 내 지역사회에서도 배척을 받았다. 항일 운동이 조선독립의 민족주의자로 변질되면서 양시봉 가족 전체가 멸시와 천대의 수모까지 감당해야 했다.

또 1970년대 들어서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양세봉은 다시 감금되면서 그의 등에는 '반혁명 분자'라는 글자까지 새겨지고, 살던 집까지 뺏기고 말았다. 정부는 멀리 있는 맏아들과 연락을 차단시켰으며, 교편을 잡던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때려 죽이는 들던 사람에 맞선 죄로 감옥에 갔으며, 셋째아들은 아버지 양시봉을 몽둥이로 때리라는 강요를 받았다.

이를 거부하던 고통 끝에 셋째 아들은 철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일본제국주의 때문에 조선이라는 고국을 떠나야했고, 일본군과 맞서는 항일 투쟁으로 맏형을 잃은 양시봉은 민족분자로 낙인 찍혀 다시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 고통은 연좌제처럼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되었다.

양시봉의 둘째아들 양의관은 2000년부터 한국보훈부에 아버지를 독립유공자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수차례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증빙자료 미비로 번번이 탈락되면서도 아버지의 공적을 기리겠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2022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마음을 양시봉의 외손녀 김춘련이 잇고 있는데, 이제는 증언할 수 있는 이들이 점점 세상을 떠나고 있어 안타까움만 더 커지고 있다. 김춘련 교수와 2007년 양세봉 장군 동상에 참배하러 간 이후부터 그간의 사정을 종종 듣고 있었다. 들을 때마다 독립운동가들의 삶도 안타깝고, 그 후손들의 삶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친일파 후손들이 더 잘사는 것에 비춰보면, 더욱 속상한 일이다. 김춘련 교수가 던지던 말들을 모아 아래에 정리하는 것으로 은폐된 우리 시대의 독립군 양시봉을 기리고자 한다. 은폐된 독립군 외손녀의 마음을 통해 양시봉이 '잊지말아야 할 독립군 양시봉'이 되는 그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춘련: 외삼촌양의관이 신청했던 서류와 보훈처의 답장을 보면서, 내가 유공자 신청서를 작성한 것과 보훈처의 탈락 답장들을 보면서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새로운 자료가 보충되어야 한다고, 양의관 외삼촌이 손으로 쓴 것이 어설픈 거 같아서 컴퓨터로 작성하고, 자료를 찾으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조국 독립투사 차명기 항일 투쟁기>에서 "1944년도 양시봉, 양정봉"이란 글을 보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광복 전의 연도에 양시봉·양정봉 두 분의 독립운동 활동을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이걸 더 보충하기 위해 청원현 당안국에서 발행한 당원표도 구하였습니다. 그렇게 애쓰시던 양의관 외삼촌마저 돌아가셨습니다.

2022년에 유공자 신청할 때 심양총영사관 보훈 담당 김용민 영사가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자료를 보여드렸더니 곧바로 『밀양의 독립운동사』 책 복사본도 구해주셨습니다. 확실히 한국 정부에서 나서면 저보다 훨씬 쉬울 거 같아요.

독립운동가 집안은 일본군을 피해 떠돌며 살았기 때문에 족보 하나 간수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제가 가족들을 조사해서 '양시봉 최근친 족보'를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이걸 만들던 2023년 무렵 양시봉의 큰 며느리 김옥순, 둘째 딸 양의순(제 어머니), 둘째 외삼촌 양의관, 막내 외삼촌 양의찬까지 모두 다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양시봉의 자녀들이 생존할 때 독립유공자로 지정하여, 그분들이 유공자의 자녀라는 보람을 얻게 하려고 시간을 다그쳤는데도 부족했습니다.

제 능력의 한계로 그분들은 영광을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현재 생존해 계신 자녀는 이모 양의복뿐입니다. 그리고 양시봉의 둘째, 셋째, 막내며느리가 생존해 계실 뿐입니다. 이분들이 살아 계실 때라도 양시봉이 유공자로 지정되면 좋겠습니다.

가족의 삶으로만 존재하던, 당대 함께 하던 이들의 증언으로만 존재하던 외할아버지 양시봉의 삶이었습니다. 이 삶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진주알을 실로 꿰매는 작업이며, 일본제국주의에 맞서던 독립운동가 양시봉 외할아버지의 삶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양세봉의 친손자 양철수와 주고받은 편지를 공개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는 참 두려웠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 한국과 북한의 관계,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 속에서도 양철수 오빠와의 편지를 공개하는 것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는 영사관으로부터 양세봉의 후손이라는 것을 의심받기까지 했습니다. 또 족보를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말들은 들을 때마다 참으로 모욕적으로까지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족보는 없었지만 양세봉의 친손자인 양철수 오빠와 편지를 주고받은 증표들이 있습니다. 그 편지들을 통해 그 당시 생존해있던 부모와 조부모의 삶을 서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그 편지들을 공개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세상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2010년에 양철수 오빠가 저한테 친필로 쓴 편지도 있고, 그 이후 오빠가 두 차례 중국에 와서 모든 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도 찍었습니다.

양철수 오빠가 중국에 방문했을 때는 저의 이모와 삼촌이 함께 만나 양세봉과 양시봉의 직계 후손이 서로 만나 혈육을 확인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전설이 아니라, 생존한 이들이 직접 경험한 것을 서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이제는 양세봉의 후손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보훈부가 수여했다는 양세봉의 훈장을 누구에게 발급한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직도 보훈부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우리 후손들은 훈장 복사를 요구받을 때마다, 누가 가져갔는지 모른다는 대답만 해야 했습니다. 그런 얘기가 나올 때 어떤 한국의 공직자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김춘련 교수도 양세봉의 후손이라는 거 입증한 거 없잖아요"

제대로 된 국가가 없어 외할아버지가 고통 속에 돌아가셨듯, 그 입증 역시 국가가 하지 못하고 삶마저 버거운 후손 개인이 감당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친일매국노 후손의 삶보다 항일운동가 후손의 삶이 고달픈 것은 해방 이후에도 여전하다는 것이 참 서럽습니다.

내가 한국의 한 공직자에게 커피를 사던 날 들은 질문은 아직까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족보는 있어요?"

그렇네요. 우리에게는 족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 족보를 만들지 못해 우리는 아직까지도 아프답니다. 더는 아프지 않겠다면서, 저는 아직 살아있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려가면서 족보를 만들었습니다.

거창한 족보책이 아니라, 가계도를 만드는데도 몇 달이 걸렸습니다. 한국, 조선(북한), 중국, 대만, 미국, 일본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양세봉의 친손자 양철수 오빠가 중국에 왔을 때 조선(북한)에 돌아가서 족보를 만들어 놓으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빠가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이후 오래도록 소식이 끊겼는데, 그사이에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만 최근에 들었습니다.

더는 우리들이 서럽지 않도록 양시봉 외할아버지의 삶도 기억해주세요.

정연수(문학박사, 장소문화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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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또 4안타 12G 연속 안타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바람의 손자'가 또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이정후(28·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시즌 네 번째 4안타 경기를 작성하며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개인 최장 연속 안타 신기록을 작성했다. 시즌 타율은 0.310에서 0.322까지 치솟았다. 내셔널리그 타격 부문 단독 4위다. 타율 0.336로 1위인 오토 로페즈(마이애미)와 큰 차이가 아니다. 이정후는 5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에서 열린 2026 메이저리그(MLB)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원정 경기에 우익수, 5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4안타 1타점 3득점으로 폭발하며 팀의 12-9 대승을 이끌었다. 첫 타석부터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1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밀워키 선발 콜맨 크로우와 맞섰다. 이정후는 0볼-2스트라이크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4구째 바깥쪽 92.2마일(약 148km)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좌전 안타를 만들었다. 지난달 15일 LA 다저스전부터 시작된 12경기 연속 안타 행진이다. 빅리그 데뷔 첫해였던 2024년 4월에 기록한 11경기 연속 안타를 넘어선 개인 신기록이다. 출루에 성공한 이정후는 후속 타선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팀의 세 번째 득점을 올렸다. [밀워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이정후가 5일(한국시간) MLB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원정 경기 3회 2루타를 치고 타구의 방향을 살피고 있다. 2026.6.5 psoq1337@newspim.com 팀이 3-1로 앞선 3회초 무사 2루 찬스에서 맞은 두 번째 타석에서는 크로우의 2구째 몸쪽 낮게 들어온 87.3마일(약 140km) 커터를 공략해 우익수 방면 1타점 2루타를 터뜨렸다. 시즌 13호 2루타이자 2경기 연속 멀티히트다. 이어 맷 채프먼의 중전 안타가 터지면서 이정후는 이날 경기 두 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4회초 세 번째 타석에서 2루수 땅볼로 물러난 이정후는 7회초 빅이닝의 서막을 여는 선두타자 안타였다. 밀워키 구원 그랜트 앤더슨의 2구째 86.6마일(약 140km) 체인지업을 기술적으로 밀어쳐 좌전 안타를 날렸다. 이후 에릭 하스의 만루홈런이 터지면서 이정후는 세 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타선이 폭발하며 7회초에만 두 번째 타석이 찾아왔다. 12-3으로 크게 앞선 2사 1루 상황이었다. 이정후는 바뀐 투수 제이크 우드포드의 4구째 93.4마일(약 150km) 싱커를 결대로 밀어쳐 2루수 키를 넘기는 우전 안타를 뽑아냈다. 지난 1일 콜로라도 로키스전 이후 4경기 만에 터진 시즌 네 번째 4안타 경기다. 메이저리그 3년 차인 이정후는 빅리그 데뷔 이후 최고의 타격감을 과시하며 내셔널리그 최고의 교타자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이날 송성문은 4일 이어 2경기 연속 벤치를 지켰고 샌디에이고는 필라델피아에 4-6으로 패해 5연패 수렁에 빠졌다. psoq1337@newspim.com 2026-06-05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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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4년 만에 '진보 우위' 재편 [서울=뉴스핌] 황혜영 기자 = 6·3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이 16개 지역 중 11곳을 차지했다. 2022년 선거에서 '진보 9 대 보수 8'로 균형을 이뤘던 구도는 4년 만에 다시 진보 중심으로 재편됐다.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34분 기준 진보 성향 후보는 서울(정근식), 경기(안민석), 인천(도성훈) 등 수도권을 포함해 부산(김석준), 울산(조용식), 경남(송영기), 전남·광주(김대중), 전북(천호성), 충남(이병도), 강원(강삼영), 제주(고의숙) 등 11개 시도에서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당선인 부부가 4일 새벽 서울 종로구 소재 선거사무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정근식 캠프] 보수 진영은 대구(강은희), 경북(임종식), 충북(윤건영), 대전(오석진), 세종(강미애) 등 5곳에 그쳤다. 이번 선거의 최대 특징은 현직 보수 교육감을 누르고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점이다. 경기, 강원, 제주에서 진보 후보가 현직 보수 교육감을 꺾으며 판세를 뒤집었다. 경기에서는 안민석 후보(52.81%)가 현직 교육감인 임태희 후보(47.18%)을 5%p 이상 차이로 누르며 당선됐고 강원에서는 강삼영 후보가 신경호 교육감을 제쳤다. 제주에서도 고의숙 후보(48.08%)가 현직인 김광수 후보(37.99%)를 꺾고 승리했다. 수도권에서는 진보 강세가 이어졌다. 서울에서는 현직 정근식 교육감이 30.35%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고 인천에서도 도성훈 교육감이 접전 끝에 36.35%를 득표하며 3선 고지에 올랐다. 이로써 수도권 모두 진보 교육감 체제가 됐다. 부산에서는 현직 교육감인 김석준 후보(50.63%)가 과반 득표로 전국 최초 4선 교육감에 올랐다. 울산 역시 진보 성향 조용식 후보가 39.22%로 36.47%를 차지한 김주홍 후보를 제치고 승리했다. 반면 대구와 경북에서는 현직 교육감이 각각 수성에 성공했다. 강은희(52.40%), 임종식(43.49%) 후보가 당선되며 보수 강세를 이어갔다. 경남에서는 보수 성향 권순기 후보(38.54%)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충청권은 지역에 따라 엇갈렸다. 충남은 진보 성향 이병도 후보(30.59%)가 승리한 반면 세종은 강미애 후보(36.25%)가 당선되며 보수 진영이 차지했다. 대전은 설동호 교육감의 3선 연임 제한으로 총 5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보수 성향의 오석진 후보(27.48%)가 막판 역전에 성공하며 당선됐다. 호남권은 기존 진보 지형이 유지됐다. 전남·광주에서는 현직인 김대중 후보(42.52%)가, 전북에서는 천호성 후보(56.63%)가 각각 당선됐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후보. [사진=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후보 선거캠프] 이번 선거에서는 10개 시도에 출마한 현직 교육감 11명 가운데 7명이 당선됐다. 2018년 전원 당선, 2022년 13명 중 9명 당선에 이어 현직 강세가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학생인권조례, 민주시민교육, 혁신학교 정책 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동시에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 통폐합, 교권 회복, AI 시대에 대응한 평가체제 개편 등 구조적 과제 해결이 주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hyeng0@newspim.com 2026-06-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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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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