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지나치다 지적
AI 시대 달라지는 보안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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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팰로 알토 네트웍스(PANW)의 사이버아크 소프트웨어(CYBR) 인수에 월가가 기대보다 우려를 내비치는 데는 250억달러에 달하는 인수 금액에 대한 부담이 일차적인 요인으로 지목된다.
팰로 알토의 인수 금액은 사이버아크의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26~29%에 달하는 프리미엄을 제공한 셈이다. 앞서 200억달러를 웃도는 조건을 예상했던 월가는 250억달러에 딜이 이뤄졌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지나치게 높은 값을 치렀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수 대금이 전액 현금이 아니라 대부분 주식으로 지급되는 데 대해서도 투자은행(IB) 업계는 적절치 않다는 평가다. 기존 팰로 알토의 주주들 입장에서 지분 가치 희석(dilution)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사이버아크의 연간 매출 성장률이 30% 가량으로 강력하지만 이번 인수 가격에 반영된 주가매출액비율(PSR)은 17배로, 팰로 알토의 수치 12배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 역시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과도한 프리미엄을 치렀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전략적 시너지 효과에 대한 회의론도 최근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네트워크와 보안을 중심으로 한 팰로 알토의 기존 주력 사업군과 사이버아크의 신원 및 권한 관리 보안 분야의 결합에서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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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아크 보안 플랫폼 [자료=블룸버그] |
고객 선호도 역시 독립 전문 기업을 선호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M&A)의 전략적 시너지와 적합성을 둘러싼 의구심이 주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키뱅크는 보고서를 내고 과거 시장을 선도했던 기업들이 메가톤급 인수합병(M&A) 이후 흔들렸던 사례들이 있었다며 이번 딜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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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아크 주가 추이 [자료=블룸버그] |
일부에서는 대규모 기업 인수 이후 단기적으로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비용 상승과 성장률 둔화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는 의견이다. 팰로 알토 주가가 사이버아크 인수 발표 후 이틀 사이 10% 이상 급락하며 연초 이후 상승분을 대부분 토해낸 것도 이 같은 논리가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대형 인수에 따른 통합 리스크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연 매출액 10억달러 이상의 기업을 인수한 데 따라 중소 업체 인수와 달리 통합 과정에 예기치 못한 운영상의 문제나 시너지 부재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CNBC의 매드 머니(Mad Money) 진행자 짐 크래이머는 팰로 알토의 주가 급락에 대해 사이버아크를 너무 비싸게 샀다는 공감대가 투자자들 사이에 형성된 데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통합 과정의 불확실성과 미래 성장에 대한 신뢰 부족이 투자자들의 매도 심리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반면 팰로 알토의 경영진은 이번 딜을 통한 전략적 시너지를 확신하는 모습이다. AI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보안 패러다임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이 같은 지각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아크가 보유한 기술을 확보할 필요성이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기업 네트워크에는 사람이 아닌 기계, 즉 서비스나 API, AI 에이전트 등의 접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전통적인 보안 및 네트워크 중심의 솔루션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ID 권한이나 접근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이버아크의 PAM 및 신원 솔루션은 해당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꼽힌다. 때문에 팰로 알토의 이번 딜이 보안 플랫폼의 '최종 퍼즐'이라고 외신들은 판단한다.
전세계 보안 소프트웨어 시장은 단일 솔루션에서 플랫폼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 팰로 알토는 이미 방화벽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 보안과 클라우드 및 데이터 보안 등 각 축을 통합해 왔는데 신원 보안이 마지막 남은 핵심 축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사이버아크 인수를 통해 업체는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데이터, AI 그리고 신원까지 모두 포괄하는 이른바 '엔드투엔드(E2E)' 보안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게 됐고, 고객들에게 보다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생성형 AI와 자율 에이전트 소프트웨어가 확산되면서 이들의 권한 관리가 보안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 됐다고 말한다.
사이버아크가 이 부분에서 확고한 기술적 강점을 지니고 있어 팰로 알토의 AI 보안 역량과 결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업체의 경영진은 주장한다.
니케시 아로라 팰로 알토 최고경영자(CEO)는 인수합병(M&A) 공식 발표문에서 "지금이 신원 보안 도입의 결정적인 순간"이라며 "사이버아크 인수가 AI 시대 보안의 새로운 본류를 선점하려는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두 개 업체 모두 전세계 1000대 기업을 포함한 대기업들의 고객 비중이 높고, 북미와 EMEA(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핵심 시장에서 강한 영업력과 생태계를 구축했다. 양사의 기존 고객 기반이 결합될 때 기대되는 효과도 크다고 경영진들은 말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빅테크와 시스코를 중심으로 보안 전문 업체들도 최근 수 십 억에서 수 백 억달러 규모로 AI 및 신원 보안 인수합병(M&A)에 뛰어들고 있다.
높은 프리미엄에 딜이 이뤄졌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투자은행(IB) 업계는 사이버아크에 대해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DA 데이비드슨은 피인수 소식이 전해진 뒤 보고서를 내고 사이버아크의 목표주가를 465달러에서 518달러로 상향 조정하고, '매수' 투자 의견을 유지했다.
업체가 78%에 달하는 매출총이익률을 포함해 월가의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 호조를 보이는 데다 팰로 알토의 주가 수준과 밸류에이션을 감안할 때 목표주가 상향 조정이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반면 UBS는 보고서를 내고 사이버아크의 목표주가를 480달러에서 485달러로 소폭 상향 조정한 한편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춰 잡았다. 팰로 알토로 피인수된 데 따라 투자 의견을 떨어뜨렸다고 UBS는 전했다.
윌리엄 블레어 역시 보고서를 통해 업체의 투자 의견을 '시장수익률 상회'에서 '시장수익률'로 떨어뜨렸다.
양사의 합병이 완료되면 사이버아크의 주식은 독립된 상장 종목으로 더 이상 거래되지 않는다. 주주들이 주식 1주당 현금 45달러와 팰로 알토 주식 2.2005주를 지급받게 됐기 때문. 사이버아크는 나스닥시장에서 상장 폐지되고 기존 주주들은 팰로 알토의 주주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투자은행(IB) 업계가 사이버아크에 대한 목표주가와 투자 의견을 조정하는 이유는 인수 완료 전까지 소위 인수 프리미엄과 향후 절차 진행 상황, 다양한 돌발 변수에 따라 업체의 주가가 큰 폭으로 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