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계약한 차세대 항공기만 87조원 규모
여객 美에 39% 의존...보잉과 '윈윈' 전략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대한항공이 25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총 69조원 규모의 역대급 계약을 체결했다. 보잉으로부터 항공기 103대를 도입하고, GE에어로스페이스와 엔진 구매 및 정비 계약(약 19조원)을 합산한 규모다.
이는 단일 계약 기준 대한항공 역사상 최대 규모로, 조원태 회장의 적극적인 미래 투자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대한항공이 지난 3월에도 보잉·GE에어로스페이스와의 계약(48조원)을 포함하면 올해 미국에서만 117조원대 계약을 성사시킨 셈이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을 앞둔 상황에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선제 투자로 해석한다. 보잉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 의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항공 측은 "선제적인 대규모 항공기 투자를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한국과 미국 간 상호호혜적 협력에도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 |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스테파니 포프(Stephanie Pope) 보잉 상용기 부문 사장 겸 최고 경영자,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미국 상무부 장관이 25일(현지시각) 워싱턴D.C. 소재 윌러드 호텔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대한항공] |
◆10년 이상 걸친 기단 현대화…노후 항공기 대체 본격화
이번 계약에는 777-9, 787-10, 737-10, 777-8F 등 차세대 여객기·화물기 103대가 포함됐다. 인도 시점은 2030년대 중후반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앞서 3월 계약한 50대(36조5000억원)까지 합치면 올해에만 총 153대를 발주한 셈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쳐 약 232대(대한항공 여객기 139대·화물기 23대, 아시아나 여객기 70대)를 운영하는 현재 기단 규모를 고려하면, 절반 이상이 신기재로 교체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을 장기간에 걸친 기단 현대화 전략으로 분석한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발주라 해도 일시에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분산되기 때문에 부담은 크지 않다"며 "노후 기재를 반납하거나 매각하면서 단계적으로 교체하면 효율성은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시아나 역시 노후 항공기 교체 수요가 크고, 저비용항공사(LCC)도 40~50대 규모 발주를 진행하고 있어 이번 계약이 특별히 무리한 수준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차세대 기종 대거 투입…운항 효율·수송력 동시 강화
도입 기종은 모두 효율성과 수송 능력을 동시에 강화한 최신 모델들이다. 777-9는 탄소복합소재로 제작된 긴 날개를 적용해 연료 효율성을 기존 대비 10% 이상 개선됐으며 1만3000㎞ 이상 비행이 가능해 인천에서 미국 전역을 무착륙 직항할 수 있다.
![]() |
대한항공 B787-10 항공기. [사진=대한항공] |
787-10은 '드림라이너' 시리즈 중 가장 큰 모델로, 787-9보다 수송 능력이 15% 늘고 기존 777-200 대비 연료 효율은 25% 이상 높다.
특히 대한항공이 처음 도입하는 737-10은 최대 200석을 수용할 수 있어 737-8보다 더 많은 좌석을 제공한다. 아시아·국내선 수요 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최적 기종으로 꼽힌다.
장거리 노선에는 777-9 및 787-10, 단거리·중거리에는 737-10이 각각 배치돼 기단 효율화 효과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불확실성 속 미래 대비 '한·미 동맹' 전략 부각
대한항공의 이번 대규모 발주는 단순한 기재 교체 차원을 넘어선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완전한 통합을 이루기 전이고, 호반그룹과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남아 있다. 내부적으로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외부 환경 변화에 맞서 글로벌 항공 공급망 불안정, 미·중 갈등, 한·미 경제협력 심화 등 대외 변수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
대한항공 여객 매출 비중. [자료=대한항공] |
미국은 대한항공의 주력 시장이다. 올해 상반기 대한항공의 전체 여객 매출에서 미주 노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39%로 가장 높다. 이런 상황에서 보잉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은 단순한 거래를 넘어 사실상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특히 최근 글로벌 항공 시장에서는 미·중 갈등 심화, 공급망 재편 등 지정학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전략적으로 보잉 기재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은 안정적인 기재 확보와 동시에 향후 노선 전략, 나아가 한·미 간 경제 동맹 구도 속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결국 이번 발주는 단순한 항공기 교체 차원을 넘어선다"며 "한·미 항공산업 협력 강화라는 외교·정치적 의미까지 담고 있어, 조원태 회장의 경제사절단 합류가 대한항공의 대규모 발주와 맞물려 민간 외교 성격을 띠었다"고 평가했다.
a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