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 회복 신호...'잃어버린 30년' 극복
日 3대 금융그룹 주가도 가파른 상승...'만년 저평가주' 꼬리표 뗐다
해외사업·전환금융·기업금융 등 활로...고령화·저성장 위기 한국도 대비해야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일본 경제 '잃어버린 30년'의 상징은 일본 3대 금융그룹이다. '만년 저평가주'라는 금융시장의 평가처럼,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금융그룹이었다. 그러나 일본 3대 금융그룹주의 주가는 2021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정부 정책과 금융사 등에 대한 규제 완화 등 혁신이 결합한 결과다.
[은행 혁신] 글싣는 순서
1. 가계대출 63%나 주택담보대출 독차지…부동산 '올인뱅크' 현실
2. 생산·포용금융 올인하는 이재명 정부, 금융권은 "유인책 부족"
3. 제로금리의 만년 꼴찌 일본 은행들의 대변신
4. 강준현 의원 "은산분리·망 분리 규제완화, 제한적 논의할 수 있어"
5. RWA 낮춰야 기업투자 커진다…'규제 대전환' 급선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보고서 '2025년 일본 경제 및 산업 전망'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로 2024년(0.4%) 대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일본의 실질 GDP 성장률은 2019년 -0.2%, 2020년 -4.5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다 2021년 반등해 올해까지 꾸준히 플러스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관련해 1991년부터 2021년 일본의 명목 GDP는 연 0.4% 성장에 그쳤지만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연 3.6%로 확대됐다.
![]() |
일본은 버블경제가 붕괴된 1991년부터 코로나19 위기였던 2021년까지 30여년간 저성장·저물가·저금리 상황을 지속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경제회복세가 가시화된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3월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17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 현재까지 세 차례 금리를 인상하는 등 디플레이션 탈피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실질 GDP 성장률은 1.9%로 한국(1.4%)을 25년 만에 추월하기도 했다.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니케이255의 합산 시가총액은 2012년 말 199조 엔에서 지난해 6월 728조 엔으로 3.7배가량 상승했다.
대규모 금융완화, 적극적인 재정정책, 성장전략 등 일본 정부의 이른바 아베노믹스 정책이 기반이 됐다. 아베노믹스는 2012년 집권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추진한 경제 정책이다. 엔화 가치를 하락시켜 일본 제품 가격 경쟁력이 상승해 수출을 증대하고 부채를 크게 늘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있다. 엔저에 기반한 수출 호황, 정부의 산업정책, 임금 상승에 따른 내수 회복이 일본 경제 회복의 3대 축으로 평가된다.
일본 경제가 회복신호를 나타낸 가운데 MUFG, SMFG, 미즈호 등 일본 3대 금융그룹의 주가 또한 2021년부터 상승세로 전환되며 '만년 저평가주' 꼬리표를 뗐다. 이들 그룹의 주가를 1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PBR은 2021년 0.40~0.45에서 2024년 0.92~1.09로 상승했다. 읿어버린 시기에 내수시장 대신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규제완화 등이 효과를 낸 덕분이다.
일본 3대 금융그룹은 2008년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 특히 동남아 시장의 현지 대형은행의 지분을 매입하고 현지법인을 설립했으며 2020년 이후에는 미국에서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은행 분야를 본격 확장했다.
일본 3대 금융그룹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연간 총영업이익은 2006년 1조 2000억엔(11조원)에서 2023년 6조 1000억엔(58조원)으로 5배 급증했다. 이들 금융그룹의 총 영업이익 가운데 해외 비중은 같은 기간 15%에서 50%로 급격히 커졌다. 이 외에도 기업금융 확대, 탄소중립을 위한 전환금융 개념 도입 등도 일본 금융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은 요소로 평가된다.
국내 금융사들도 해외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성과는 아직 미미한 상태다. KB, 신한, 하나, 우리금융 등 한국 4대 금융그룹의 2024년 해외사업 총 연간 영업이익은 4조1698억원에 그친다. 해외 비중은 10~20% 수준이다. 또한 노후금융, 전환금융, 기업금융, 디지털 전환 부분의 경쟁력 강화도 요구된다.
기업금융과 전환금융을 확대한 점도 장기불황 극복 요소다. 기업금융은 일본 정부의 '아베노믹스'를 거치며 투자 활성화 정챡 영향으로 가속화됐고 그 중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일본의 기업대출 총 잔액 중 부동산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3년 14%에서 지난해 상반기 26%까지 높아졌다. 또 상업용 부동산시장이 주거용의 2.7배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상업용 부동산시장이 팽창하면서 관련 대출 총액이 증가했지만 부채 의존도는 낮다는 점이다. 이는 공급을 담당하는 민간 부동산 디벨로퍼와 투자를 맡는 J-리츠(부동산투자신탁)가 자기자본을 높게 유지하는 전략을 채택, 재무안정성을 높게 유지하면서 양질의 부동산 금융 생태계를 만드는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J-리츠의 총 합산 가치는 26조엔(약 243조원)으로 한국(99조원) 대비 20배가 넘는 수준이다. 탄탄한 건전성을 바탕으로 주주가치 최우선화, 지배구조 신뢰성, 투명한 정보공개 등을 견지한 것이 J-리츠 성장비결이다. 이는 비교적 낙후된 지배구조와 투명성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리츠들이 개선해야할 숙제로 꼽힌다.
또한 일본 정부가 탄소중립으로 가기위한 목적의 '전환금융' 개념을 도입한 점도 주목할만 하다. 전환금융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기술과 활동인 전환활동에 대해 지원하는 금융을 뜻한다.
기업의 전환활동에 금융사들이 자금을 공급하고, 국가는 이자감면이나 보조금 지원을 하는 방향이다. 민간 금융회사 입장에서 전환금융은 기업을 대상으로 금융기회를 창출해내는 새로운 사업기회다. 또한 국가는 비교적 적은 재정지출로 기업의 전환활동을 유도할 수 있고, 기업은 사업자금 확보가 용이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의 3대 대형금융그룹의 합산 전환금융 공급액은 2021년 2000억엔(1조8800억원)에서 2023년 1조 1000억엔(10조 3400억원)까지 늘었고 3년간 누적 공급액은 2조엔(18조 8000억원)에 육박한다. 향후 더 큰 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령화에 따른 대출수요 축소에 대비한 신규 수익원 발굴이 시급하다"며 "인구변화는 단기에 체감하기는 어려우나 지속적이고 강력한 충격이므로 은행들은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일본은행(BOJ) 본청 건물 [사진=블룸버그] |
한국은 올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 수도권 집중, 부동산시장 불균형 등 특성이 일본과 닮은 꼴로 여겨진다. 일본이 겪은 장기침체 위기에서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한국이 일본과 같은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는 변동금리, 단기대출 중심의 가계부채 구조를 장기, 고정금리로 전환해 충격 흡수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금융이 부동산 담보 중심에서 혁신, 생산 부문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금융시스템을 다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의 역할을 단순한 자산 버블 확대가 아니라 생산적 투자와 위험 관리에 두는 것이 한국이 일본식 장기침체를 피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omeo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