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달러 지분 투자·칩 공동개발 발표
美 공급망 전략 속 경쟁 구도 변화 주목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엔비디아가 인텔에 50억 달러(약 7조 원)를 투자하고 PC·데이터센터용 칩 공동 개발에 나서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지각 변동이 예고됐다. 다만 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인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은 포함되지 않아 삼성전자와 TSMC는 일단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18일(현지시간) 인텔 보통주 50억 달러어치를 주당 23.28달러에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엔비디아는 인텔 지분의 4%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가 된다. 양사는 이번 지분 투자를 계기로 ▲인텔의 차세대 PC 칩에 엔비디아 그래픽 기술을 탑재하고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시스템에는 인텔 CPU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공동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발표 이후 컨퍼런스콜에서 "양사 엔지니어링 팀은 1년 전부터 협력을 준비해 왔다"고 강조했다. 인텔은 최근 자산 매각, 소프트뱅크 20억 달러 투자 유치, 미국 정부의 지분 확보(10%) 등을 통해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었으며, 이번 엔비디아 참여로 '부활 시나리오'에 힘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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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타이베이 국립대만대 종합체육관에서 한 '컴퓨텍스(COMPUTEX) 2024' 기조연설에서 올 하반기 출시할 인공지능(AI) 가속기 '블랙웰(Blackwell)'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파운드리 계약은 빠졌지만 긴장 지속
'인텔 부활'의 핵심으로 꼽히는 파운드리 고객사 확보는 이번 협상에서 제외됐다. 인텔은 인공지능(AI) 칩 시장 진입이 늦고,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삼성전자·TSMC와 달리 대형 고객을 확보하지 못해 이중고를 겪어 왔다. 때문에 엔비디아나 애플 같은 글로벌 대형 고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엔비디아가 자사 칩을 인텔에 위탁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지만, 현재로선 구체적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협업 제품이 당장 출시되지 않는 만큼 단기적인 산업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인텔 지분 투자와 협업은 중장기적으로 산업의 변화를 줄 것"이라면서도 "이번 협업이 제품에 한정되어 있는 만큼 TSMC와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 삼성·TSMC, 중장기 리스크 불가피
업계는 다만 향후 파운드리 계약이 성사될 경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만약 엔비디아가 일부 칩 생산을 인텔에 위탁하게 되면, 현재 핵심 파트너인 TSMC의 지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역시 점유율 확대 기회가 줄어들고, TSMC와 인텔 사이에서 고객 확보 전쟁이 격화되는 부담을 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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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
특히 미국 정부가 직접 인텔 지분을 보유하며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앞서 트럼프 정부는 인텔에 57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지속적으로 반도체 관세 정책을 강조하는 등 자국 중심 산업 육성에 집중해왔다. 이번 엔비디아 투자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책적 고려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AMD 등 기존 인텔 경쟁사들도 타격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인텔에 힘을 보태면 PC 칩 시장에서 AMD의 입지는 약화될 수 있다"며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중심의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메모리 공동 개발 생태계에 대응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ji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