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마다 폭죽처럼 터지는 불꽃이 숨어있는 시
최승자의 시를 읽고 산다는 건 이 시대의 축복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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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갤러리 508에서 열리는 이준호 작가의 개인전 '상처의 자리, 꽃이 피다'전. 화면 위를 칼로 긁어내는 행위를 통해 생명과 상처, 치유의 감각을 시각화한 신작 시리즈 중 하나다. Flower-13 65.1 x 53cm(15호) 2025.12.04 oks34@newspim.com |
지금 네 눈빛이 닿으면 유리창은 숨을 쉰다.
지금 네가 그린 파란 물고기는 하늘 물 속에서 뛰놀고
풀밭에선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다니고,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
눈만 뜨면 신기로운 것들이
네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때로 너는 두 팔 벌려, 환한 빗물을 받으며 미소짓고……
이윽고 어느 날 너는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으로 출근하리라.
많은 사람들을 너는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그러나 나의 몫은 이제 깊이깊이 가라앉는 일. 봐라,
저 많은 세월의 개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잖니,
흰 이빨과 흰 꼬리를 치켜들고
푸른 파도를 타고 달려오잖니.
물려 죽지 않기 위해. 하지만 끝내 물려 죽으면서,
나는 깊이깊이 추락해야 해.
발바닥부터 서서히 꺼져들어가며, 참으로
연극적으로 죽어가는 게 실은 나의 사랑인 까닭에.
그리하여 21세기의 어느 하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무덤에 술 내리고
나는 알지
어느 알지 못할 꿈의 어귀에서
잠시 울고 서 있을 네 모습을,
이윽고 네가 찾아 헤맬 모든 길들을,
―가다가 아름답고 슬픈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동냥바가지에 너의 소중한 은화 한 닢도
기쁘게 던져 주며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
- 최승자, '20년 후에, 지(芝)에게'(시집 '즐거운 일기', 1984, 문학과지성사)
최승자 시인처럼 온몸으로 시를 쓴 시인은 드물다. 하여, 그의 시를 읽는 것은 고통이다. 그렇지만 행간마다 폭죽처럼 터지는 불꽃이 숨어 있다. 그것은 때로 읽는 이의 마음속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그만큼 최승자는 온몸으로 세상을 살았다. 그랬기에 최승자에게 삶은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다.
서울의 3평짜리 고시원에서,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를 마시면서 시를 썼던 최승자는 지금 어디쯤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하여 21세기의 어느 하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무덤에 술 내리고'라고 노래했던 시인은 곧 눈 쌓인 산하를 바라보면서 또 한 편의 시를 쓸 것이다.
이런 겨울, 최승자의 시를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어쩌면 저편 어느 하늘 아래에서 쓴 그녀의 시가 첫눈과 함께 펑펑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를 원 없이 맞아 보고 싶다.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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