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2년 97조 시장으로 급성장…차세대 전고체로 '독주' 전략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전기차 수요 둔화(캐즘)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계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간의 신체 구조를 닮은 휴머노이드 특성상 배터리 탑재 공간이 제한적이고 순간적인 고출력이 필수적인데, 이는 중국이 주도하는 리튬·인산·철(LFP)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한국산 삼원계(NCM) 배터리에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테슬라와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로봇 제조사들이 한국 배터리사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이은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 시점에 맞춰 글로벌 로보틱스 기업들과의 협업 범위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옵티머스는 사람과 유사한 형태로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경량성과 고밀도 출력이 핵심이다. 이에 에너지 밀도가 높은 4680(지름 46mm, 높이 80mm) 배터리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또 베어로보틱스와도 배터리 공급 계약 MOU를 체결한 바 있다. 올해부터 베어로보틱스가 생산하는 서비스 및 산업용 로봇에 원통형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고 있다.
삼성SDI 역시 현대차·기아와 로봇 전용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는 등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응한 맞춤형 포트폴리오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국내 배터리 업계의 새로운 기회로 불리는 이유는 하드웨어적 구조 때문이다. 인간의 외형을 구현해야 하는 휴머노이드는 배터리를 장착할 수 있는 내부 공간이 가슴 부위 등으로 극히 제한적이다. 반면 고난도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내는 고출력 성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지점에서 국내 기업들의 주력 제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등 삼원계 배터리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배터리 업계 측 설명이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주도하는 LFP 배터리는 가격이 저렴하고 안전성은 높지만, 삼원계 대비 에너지 밀도가 약 30% 낮고 무게가 무겁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며 "로봇의 활동 시간과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같은 크기와 무게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한국산 고밀도 배터리가 최적의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등 주요 모델들이 삼원계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인 시장 규모 전망도 우호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지난해 약 24억3000만 달러(약 3조5700억 원)였지만, 2032년 660억 달러(약 97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휴머노이드 한 대당 배터리 용량은 약 5킬로와트시(kWh)로 전기차(60kWh)의 8% 수준에 불과하지만, 상시 가동되는 로봇 특성상 잦은 교체 수요가 발생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에 배터리 업계에서는 교체용 배터리 수요까지 합산할 경우 로봇 시장이 창출하는 전체 배터리 사용량이 전기차 시장의 절반 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한다.
로봇이 본격적으로 산업 현장에 배치되는 2028년 전후가 본격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나믹스가 최근 공개한 차세대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모델은 2028년 미국 조지아주 공장 투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 번 충전으로 약 4시간 작동하며, 방전 시 스스로 배터리를 3분 만에 교체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러한 자가 교체 방식은 배터리 회전율을 높여 배터리 제조사의 실질적인 매출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업들은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통해 독주 체제를 굳힌다는 전략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삼원계의 에너지 밀도와 LFP의 안전성을 동시에 갖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특히 가정용 로봇 보급 시 화재 안전성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화재 위험이 낮은 전고체 배터리는 휴머노이드 배터리 시장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SDI는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도 각각 2030년과 2029년을 목표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터리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일시적인 수요 정체기에 진입했지만 로봇이라는 차세대 시장이 열리고 있다"며 "공간 효율과 출력이 핵심인 로봇 시장 특성상 기술적 우위를 점한 국내 배터리사들이 초기 시장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yki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