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일본 정치권이 또다시 '금권 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당선된 자민당 의원들에게 총 1억원 상당의 선물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다카이치 총리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워 정면 돌파에 나섰지만, 야권과 언론은 금권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민당의 체질적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8일 치러진 총선에서 당선된 자민당 의원 315명 전원에게 1인당 약 3만 엔(약 27만 원) 상당의 '카탈로그 선물'을 보냈다. 전체 금액은 우리 돈 약 1억 원에 달한다.
해당 선물에는 "축하합니다.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메시지가 동봉된 것으로 알려졌다. 카탈로그 선물은 수령자가 책자에서 원하는 상품을 직접 고를 수 있는 형태로, 일본에서는 주로 경조사 답례품으로 쓰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인 규모의 '선물 공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리 측은 해당 선물이 정치자금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졌으며, 위법성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자금수지보고서 등 법적 절차에 맞게 처리됐다는 설명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6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선물을 반환하도록 요구할 생각이 있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돌려 달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야권은 "법적 문제와 정치적 책임은 별개"라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총리 취임 이후 처음 맞는 대형 정치자금 논란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번 사안이 단발성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집권 자민당은 최근 수년간 정치자금 문제로 잇따라 도마에 올랐다.
2023년에는 당내 주요 파벌이 정치자금 모금 행사 수입 일부를 비자금 형태로 조성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파벌 중심의 불투명한 회계 관행이 구조적으로 고착돼 있다는 점에서 "당 전체의 조직적 부패"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2025년에는 이시바 시게루 당시 총리가 초선 자민당 중의원 15명에게 1인당 10만 엔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나눠준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다.
이시바 총리는 "정치 활동에 관련한 기부가 아니어서 공직선거법·정치자금규정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인식이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사과에 나서야 했다.
당시에도 여당 내에서조차 "법 위반 여부 이전에 '총리로부터 현금성 선물을 받는' 행위 자체가 금권 정치의 상징"이라는 자성론이 나왔으나, 이번 다카이치 총리가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자민당 전반의 정치 문화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법 위반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신뢰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여러 차례 정치자금 스캔들을 겪고도 자민당의 관행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금권 정치 체질이 여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파벌 중심 정치가 약화됐다고는 하지만,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자금·선물 제공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총리가 "법적 문제 없음"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정치적 감수성 부족이 부각된다는 지적이다.
이번 논란은 향후 국회 운영과 지지율 추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야당은 정치윤리 강화와 정치자금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공세 수위를 높일 태세다. 반면 자민당은 위법성이 없다는 점을 앞세워 방어에 주력할 전망이다.
결국 쟁점은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반복되는 자금 스캔들 속에서 유권자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그리고 자민당이 실질적 쇄신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가 일본 정국의 향배를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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