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독일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30일 88세로 별세했다.
- 베니스비엔날레 맞춤 신작전이 유작전으로 바뀌고 서울 회고전은 예정대로 열린다.
- 거꾸로 그린 그림으로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으로 명성을 쌓았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서울 세화미술관도 8월 회고전 준비 중, "예정대로 개최"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거꾸로 뒤집은 그림'으로 명성을 쌓은 독일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지난 3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8세.

바젤리츠를 전속작가로 두고 있는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의 창립자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20세기 후반 독일 미술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며 30일 타계 소식을 전했다.
로팍 대표는 또 "바젤리츠의 작품에는 예술적 선조들과 지속적으로 맺어온 교감, 작가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과의 '대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밝혔다.
바젤리츠는 오는 5월 9일 개막하는 제 61회 베니스비엔날레에 맞춰 산 조르지오 마조레섬의 조르조 치니 재단에서 근작전 '황금빛 영웅'을 6일 개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전시는 작가 타계로 유작전이 되고 말았다. 한편 작가는 오는 8월 서울 세화미술관에서도 회고전이 예정돼 있다. 세화미술관측은 "전시는 예정대로 개최된다. 출품작 협의는 이미 끝난 상태"라고 밝혔다.

1938년 동독 도이치바젤리츠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미술에 심취했던 한스 게오르그 케른(바젤리츠의 본명이다)은 미술대학에서 '사회정치적 미성숙'을 이유로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리곤 1957년 서독으로 망명했다. 탄광으로 끌려가 교화교육을 받을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서베를린에서 그는 미술공부를 계속했고, 고향을 기리는 의미로 1961년부터 바젤리츠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형 남성 누드화를 건 1963년 서독에서의 첫 개인전은 풍기문란을 이유로 폐쇄됐다.
그는 동독 미술의 본령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가도, 서독에서 풍미하던 추상 표현주의 작가도 아니었다. 양쪽 사조 모두에 저항하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독창적인 세계를 다져가기 시작했다. 1969년부터는 캔버스를 거꾸로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트레이트 마크인 '거꾸로 그린 그림'이 탄생한 것.
당시 그는 독수리 그림 연작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제 3제국과 전후 독일 연방공화국인 상징이던 독수리를 거꾸로 그리니 땅으로 떨어지는 듯한 모습이 됐다. 이 시리즈는 바젤리츠의 대표작이 됐다.
1980년에는 또다른 동독 출신 작가 안젤름 키퍼와 함께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참여했다. 그 때 출품한 조각도 논란을 일으켰다. 한쪽 팔을 치켜든 채 누운 남자의 모습이 나치식 경례로 보였기 때문이다.
키퍼와 함께 바젤리츠는 독일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힌다. 두 작가는 분단을 거친 독일이란 국가에 대한 애증을 바탕으로 독일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현대사를 드러내는 작품을 제작했다.

작가는 근래들어 황금빛 바탕에 인물을 거꾸로 그리는 '황금빛 영웅'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거꾸로 그린 그림 속 인물은 대부분 아내 엘케크레츠슈마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엘케와는 서베를린으로 이주한 직후 만나 평생을 뮤즈이자 동반자로 함께 했다. 만년에 접어들며 바젤리츠는 늙어가는 자신과 아내를 함께 그리기도 했다. 물론 거꾸로 그렸다.
바젤리츠는 "나는 그림을 시작할 때 마치 땅을 일구고 구멍을 뚫듯, 혹은 남몰래 엿듣거나 되새김질하고 광물을 채굴하듯, 무엇이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렇게 선과 형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속한 세계를 넘어 또 다른 세계로 스스로를 실어 날랐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