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정부가 내년 162조3000억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했다.
- 추가세수 선적립은 법정 채무상환을 우회할 소지가 있다.
- 변경·전출·심의 통제장치와 일몰 규정이 필요하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경한도 30%·일반회계 전출 무한도·심의위원장은 예산처 장관
배분준칙·사전의결·일몰조항, 3대 잠금장치 법에 명시해야
[세종=뉴스핌] 정성훈 경제부장 = 정부가 내년 예산에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한다. 공공자금관리기금(328조원), 국민연금기금(185조원)에 이어 국내 69개 기금 중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신설 첫해부터 매머드급이다.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 경기가 좋을 때 늘어난 세입을 당해 연도 지출로 모두 써버리면 불황이 닥쳤을 때 감당하기 어렵다. 한번 늘어난 지출은 줄이기 힘든 반면, 세수는 경기를 타며 크게 출렁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처럼 다년간 굵직한 투자가 필요한 분야를 1년 단위 예산에 묶어두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호황기에 물을 채웠다가 가뭄에 꺼내 쓰는 '재정 저수지'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설명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좋은 목적이 곧 좋은 제도를 담보하진 않는다. 기금의 재원부터 정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162조3000억 원은 결산으로 확인된 초과세수가 아니다. 내년 국세수입 전망에서 최근 10년 내국세 연평균 증가율(6.2%) 추세선을 웃도는 몫을 '추가세수'로 셈한 금액이다. 즉, 아직 걷히지 않은 돈이다. 정부는 이 중 45조4000억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4대 계정 사업비로 쓰고, 12조5000억 원으로 내년 신규 국채 발행을 줄이며, 남은 104조4000억 원은 여유자금으로 적립해 주식과 채권으로 굴리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여기서 그동안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히면 원래는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국가재정법 제90조는 결산으로 확정된 세계잉여금의 30% 이상을 공적자금상환기금에 우선 출연하고, 남은 금액의 30% 이상을 국가채무 상환에 쓰도록 못 박고 있다. 이는 정부의 선의에 기댄 권고가 아니라 법이 강제하는 의무다. 호황기의 잉여재원이 빚을 줄이는 데 쓰이도록 재정 시스템이 마련해 둔 '자동 제어 장치'이기도 하다.
미래대응기금은 이 순서를 교묘히 앞지른다. 추세선을 넘는 세수를 결산 이전 단계에서 기금으로 빼내면 세계잉여금 자체가 줄어든다. 모수가 줄어드니 법이 정한 의무 상환액도 덩달아 쪼그라든다. 빚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대신, 갚아야 할 기준 금액을 미리 덜어내는 셈이다. '정부 쌈짓돈'이라는 정치적 수사보다 이 대목이 훨씬 무겁다. 재량의 문제가 아니라 법정 의무를 우회하는 꼼수 설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획예산처는 104조 원을 기금에 넣지 않고 일반회계로 넘겼다면 내년 지출증가율이 27%로 치솟았을 것이고, 전액 국채 상환에 썼다면 국채 시장이 충격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 항변한다. 양극단을 피한 현실적 균형점이라는 주장이다. 국채 발행을 줄인 덕에 올해 51%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내년 48%대로 떨어진다는 점도 내세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역시 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다 갚아버리면 나중에 국채를 발행할 때 더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며 상환보다 적립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채무 상환과 기금 적립 중 어느 한쪽이 절대 선일 수는 없다.
그래서 질문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 돈을 어디에 두느냐보다, 그 돈에 '얼마나 단단한 자물쇠를 채우느냐'가 관건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정부안의 자물쇠는 세 군데나 헐겁다.
첫째, 변경 한도다. 정부가 함께 낸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미래대응기금의 주요 항목 지출금액을 30% 이하 범위에서 국회 승인 없이 자체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 기금(20%)보다 10%포인트(p)나 넓다. 정부는 주요 항목별로 적용되니 과장된 우려라지만, 내년 사업비 45조4000억원이 한도까지 조정된다고 가정하면 무려 13조 원대가 국회 의결 없이 움직인다. 웬만한 중앙부처 한 해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한도 비율 자체보다 한도가 적용되는 판 자체가 커졌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둘째, 그 한도마저 무력화되는 직통로가 있다. 일반회계 세입 부족을 메우기 위해 미래대응기금에서 돈을 빼갈 때는 30% 한도조차 적용받지 않는다. 정부가 세수결손이라 판단하면 100조원대 여유재원을 임의로 끌어다 쓰고 사후 보고만 하면 끝이다. 정작 세수결손을 객관적으로 가늠할 법적 기준은 전무하다.
셋째, 심의 구조의 한계다. 신설되는 미래대응기금운용심의회 위원장은 기획예산처 장관이 맡는다. 기금을 편성하는 부처와 심의하는 기구, 결산을 확인하는 주체가 같아진다. 다부처 기금의 일반적 관행이라지만, 162조원짜리 매머드 기금에까지 이 느슨한 관행을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기금운용계획이 국회 심사를 받고 변경 내역도 보고되니 아예 통제 밖의 돈이라 매도할 순 없다. 그러나 사전 통제와 사후 보고는 전혀 다른 제도다. 재정민주주의의 요체는 돈을 쓴 뒤 국회에 알려주는 데 있지 않고,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가 쓸 곳을 미리 결정하는 데 있다. 정부가 기동성을 얻는 대신 국회는 통제권을 내준다. 그 교환이 162조원 규모에서도 적정한지 따져봐야 한다.
여기에 중앙과 지방의 얽힌 재정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기금 내 지방계정과 교육·인재계정을 따로 둔다지만, 결국 내국세에 자동 연동되던 지방 재원이 중앙정부의 '재량 배분'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재정 운용의 변경을 넘어 중앙-지방 간 재정 관계를 재편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지속가능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기획예산처가 당정 예산협의에서 기금 운용 기간을 사실상 5년으로 보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불거진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부·여당은 세수 여건이 양호할 때 선제 투자하고 훗날을 대비하겠다는 해명을 내놨지만,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다. 반도체 호황이 영원할 리 없건만 기금으로 시작한 청년지원, 지방투자, AI 육성 사업 등은 한 번 닻을 올리면 쉽게 거둬들일 수 없다. 한시적 횡재로 상시적 지출 구조를 낳는 것, 재정 운용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조합이다.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면 사업을 폐기할 것인가, 일반회계로 떠넘길 것인가, 아니면 또 빚을 낼 것인가. 정부는 지금 답을 내놓아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을 기어이 출범시키겠다면 최소 세 가지 잠금장치를 법에 명시해야 한다. 먼저 '추가세수 배분 준칙'이다. 국가재정법이 세계잉여금에 규정한 것과 동일한 수준의 채무상환 의무 비율을 미래대응기금법에도 못 박아야 한다. 결산 전이라는 이유로 상환 의무를 증발시킨다면 그것은 제도가 아니라 얄팍한 회계 기술에 불과하다.
다음은 '통제 장치의 복원'이다. 변경 한도를 일반 기금과 동일한 20%로 되돌리고, 일반회계 전출은 규모와 무관하게 전액 국회 사전 의결을 거치도록 묶어야 한다. 세수결손을 판단하는 기준도 반드시 법제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인가(일몰) 장치' 도입이다. 일정 주기로 기금의 존속 여부와 성과를 국회가 원점 재검토하도록 일몰 조항을 두고, 기금운용심의회에는 국회 추천 외부 위원을 과반으로 채워야 한다.
정작 국회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예산안이 넘어왔는데도 소관 상임위인 재정경제위원회는 여야 대치로 소위조차 꾸리지 못했다. 내년에 처음 생기는, 그것도 162조원짜리 기금을 현미경 심사할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정권은 바뀐다. 장관도 바뀐다. 재정 여건도 바뀐다. 제도는 '선한 정부'를 전제로 설계해선 안 된다. 누가 운전대를 잡든 함부로 금고를 열 수 없게 견제하는 것, 미래를 위한 돈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정부가 이 기금을 진정한 '재정 저수지'로 부르고 싶다면, 물을 가두는 요령보다 둑의 수문을 누가 어떤 조건에서 열 수 있는지부터 법규에 단단히 새겨넣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미래대응기금은 미래를 준비하는 저수지가 아니라, 미래라는 이름을 빙자한 거대한 '재정 주머니'로 전락할 수 있다.
j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