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사헌 기자] 최근 에너지 및 상품 가격 랠리와 이들 가격의 장기 강세 전망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은 중대한 해결 과제로 등장했다.
이 가운데 지금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과연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 혹은 능력을 가졌느냐 하는 신뢰에 금이 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중적인 분노가 솟구치고 있다는 분석이 주목된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해롤드 제임스(Harold James) 역사학 교수는 지난 5일자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 Syndicate)의 칼럼을 통해 "지난 20년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자신했지만, 금융 위기 발생 이후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화폐를 발행하자 이런 믿음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중앙은행의 신뢰 손상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일례로 미국 보수적 유권자를 대변하는 '티파티(Tea Party)'는 금 본위제를 다시 도입하자는 주장을 내놓았으며, 특히 미국 유타주 의원들은 연준을 더이상 믿지 못하겠다면서 금과 은을 법정화폐로 승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타주 외에도 다른 12개 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안이 심의를 앞두고 있어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또 독일의 인플레이션 우려는 독일 정부로 하여금 유럽연합(EU)의 구제 요건에 대해 좀 더 강력한 입장을 취하게 만들었으며, 중국은 인플레이션이 대규모 사회적 불만을 이끌어 내고 있다.
특히 중동 불안 사태가 지속되고 있고 일본 원전 사고로 인해 원자력의 미래에도 의문 부호가 켜지면서, 아직 세계경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석유시장 수급 전망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 '물가안정 목표제'에 큰 의문
제임스 교수는 지난 20여년 간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주된 안정 장치인 이른바 '물가안정 목표(inflation targeting)'라는 틀에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물가를 고려할 때 에너지와 식량과 같은 품목을 제외하는 '근원 물가(core inflation)'를 사용하는 방식에 큰 문제가 드러났다고 한다.
예를 들어 2007년 이전까지 많은 미국인들은 상대가격이 급등한 자기 집을 담보로 한 대출로 상대가격 변화가 작은 소비재를 구매했고, 이런 식으로 소비재의 가격은 점점 더 저렴하게 느껴지게 됐다.
지금은 그 때와 반대로 신흥시장의 호황을 따라 식량과 에너지 가격은 급등하는 반면 미국의 주택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는데, 이렇게 상대가격의 변화가 우려되기 시작할 때 "아무런 해답을 내놓지 않는 통화정책 당국에 대한 분노가 솟구치는 법"이라고 제임스 교수는 지적했다.
제임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물가안정목표제'는 총통화량 관리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학술적인 해석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1990년 뉴질랜드와 1991년 캐나다에서 이 제도의 성공에 이어 스웨덴과 영국 등으로 도입이 확산되었으며, 이 방식은 '기대 인플레이션(inflation expectation)'을 억제하는 가장 뛰어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달러화나 유로화 그리고 일본 엔화 등 대규모의 기축 통화는 이런 명시적인 '물가안정목표'에 따라 관리되지 않았지만, 유럽과 미국의 중앙은행도 암묵적으로 2%선의 바람직한 물가 목표가 설정된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위기가 발생하거나 큰 충격이 발생할 경우 최근 미국 주택가격과 소비재 가격 사이의 상대 가격이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기 때문에, '일반화된 물가 안정 수준'이란 것은 사실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 장기 인플레이션 주기와 통화정책의 외생변수
제임스 교수는 일부 계량경제적 분석을 통해 인플레이션과 화폐량 증가의 장기지속 주기가 밝혀졌다고 소개한다.
경제학자인 루카 베나티에 따르면 이런 주기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과 1930년대 말, 1960년대 말 그리고 1970년대가 이미 잘 알려져있고, 또 2000년대 초반에 영국과 미국에서 장기 기초 인플레이션의 상승 주기가 관찰된다고 한다.
특히 가장 최근의 장기 인플레이션 주기 경험인 1970년대의 논쟁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석유 혹은 여타 상품 가격 급등은 '외생변수'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선진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에서 실질적인 기초 변수로 간주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 분석에서는 식량과 에너지 물가를 제외한 지표를 사용했다. 오늘날 변동성이 너무 큰 식량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에 대한 논란은 더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973년 이후 발생한 유가 충격은 부분적으로는 1960년대 말과 1970년 초의 주요 선진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고 제임스 교수는 지적했다.
유가의 실질 가격이 뒤처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산유국들은 극적인 대응 양상을 보였다. 1970년대 초반에 여타 상품가격은 크게 상승했는데, 이는 미국과 여타 주요국의 완화 통화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였다. 천연가스 공급 부족은 비료가격을 높였고 이어 식량가격도 상승했다. 이로 인해 다수 빈국에서 저항이 증가했고 이에 따라 다른 상품 수출에서 더 많은 이익을 추출해야겠다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뒤따랐다.
1970년대 사례처럼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발생한 식량 및 에너지 가격 상승세는 선진국의 완화 통화정책에 더욱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로 인해 경제적 불만이 양산되었고, 이는 아랍권의 '민주화의 봄'를 이끄는데 상당히 기여했다는 지적이다.
제임스 교수는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화폐량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는 더이상 통화정책의 외생변수가 아니며, 따라서 이들 품목을 제외한 '근원 물가'를 이용하는 것은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장기적인 상대가격 변화에 주목해야
미국 연준 관계자들도 이 지표가 가지는 문제점을 회피하려고 노력 중이며, 소비자의 행태 변화를 분석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를 통해 근원소비지출(PCE)물가지수 등 다양한 지표가 활용된다.
원래 인플레이션이란 계속 재정의된다. 영국은 CPI에 전자데이트 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품목을 추가해서 지수 자체를 다시 계산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사회적인 변화를 반영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락하는 물가 항목을 가능한 한 더 편입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의 경우 연간 물가 상승률을 10%로 맞춰놓고 민간 경제전문가가 이보다 높은 결과를 발표하면 과중한 벌금을 물리면서 "구조적 인플레이션은 없다"고 선언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도 했다. 민간에서 측정한 물가 상승률은 25%에 이른다.
제임스 교수는 "이런 통계적인 조작은 불확실성을 높이고 이에 따라 신뢰를 잠식"한다면서 "따라서 좀 더 좋은 방식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잘 제어하기 힘든 상대가격의 변화와 같은 좀 더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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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