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1999년 도입된 유로는 첫 10년 동안 투자 측면에서 유로존의 결속을 강하게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재정기반이 취약했던 신흥국들이 반사이익을 얻었다.
유로 도입에 따라 투자은행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은 드라크마나 리라 등 신흥국 통화의 평가절하 리스크에서 자유로워졌고, 이 때문에 이들의 국채를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통화 평가절하보다 더 큰 리스크를 인식하지 못했다. 다름 아닌 '디폴트 리스크'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로를 구심점으로 강한 응집력을 보였던 투자 업계가 디폴트 리스크로 인해 해산하는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은행과 보험, 연기금을 포함한 북유럽 기관투자자의 주변국 국채 보유량이 대폭 감소한 것.
손실 리스크에 극도로 민감해진 투자자들은 해외 투자를 독일에 국한한 채 자국 채권 매입에 주력하고 있다.
유럽은행감독청(EBA)에 따르면 북유럽 18개 대형 은행의 유로존 주변국 국채 보유 규모가 대폭 감소했다.
지난해 3월말 2300억유로에 달했던 국채 보유량은 2010년 말 약 1600억유로로 감소한 데 이어 올해 9월말 1250억유로로 추가 감소했다.
핌코의 앤드류 볼스 유럽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국채 투자자들 사이에 단일 통화 공동체 유로존의 분열 조짐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자국 시장을 복귀하고 있고, 유로존 내 해외 국채는 독일로 제한하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수 분기에 걸친 재정 부실이 유로존 부채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면 이를 본격적으로 촉발시킨 것은 유로존 내부의 투자자들 움직임이라고 WSJ은 지적했다.
북미 지역의 기관 투자자들이 단시일 안에 주변국 국채 시장에 복귀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의 전망이다.
이에 따라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를 차환 발행을 해야 하는 부채 위기 국가는 장기적으로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ING은행의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이코노미스트는 “정책자들이 위기 해법을 제시했지만 투자자들의 자국 편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금 이동의 규모로 볼 때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단기적인 신뢰의 위기나 투자심리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WSJ은 지적했다.
일부 유럽 국가의 재정적인 측면의 생명줄이 위축되고 있고, 향후 수 년간 금융시장 복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신용 경색이 연쇄적인 정부 파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유럽 전역의 금융시스템을 위협하고, 결국 침체의 골을 더 깊게 악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단일통화 유로 출범은 재정 기반이 취약했던 국가에 자금줄을 공급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유로존 정부가 채무 상환에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였다. 디폴트 리스크를 제로 수준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기관 투자자들은 국채에 대한 충당금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용 자금으로 국채 매입을 더 늘렸다.
일례로, 그리스 국채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2003년 55%에서 2009년 3/4분기 76%로 급증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7월 EU 지도자들이 그리스 국채 투자자에게 50%에 이르는 자발적 손실 분담을 요구한 것이 금융업계에 대한 경종이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은 이때부터 주변국 국채 비중을 본격적으로 줄였다는 지적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