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대출 확대를 꾀했지만 도통 통하질 않자 금융당국이 해법을 내놨다. 연대보증, 담보철폐 등 은행 대출심사 관행을 개혁해 중소기업에도 돈이 돌게 하자는 시도가 그것이다. 은행원 평가에까지 손을 댔다. 수십년 이어온 관행을 단숨에 바꾸기도, 꺼내든 칼날을 함부로 휘두르기도 어려운 당국 속내도 있지만 이번엔 뭔가 조금 달라 보인다. 중소기업 현장과 금융권 안팎에선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이에 뉴스핌은 정부가 내놓은 중소기업 금융환경 개선방안들이 실효성을 갖기 위한 보완대책은 뭔지, 중소기업 경영인들과 은행 여신담당자들을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일부 은행의 중기 대출금리에 대한 혁명적인 시도도 엿보였다. <편집자 주>
[뉴스핌=홍승훈 기자] "회사 설립초기 정작 필요할땐 안 빌려주다 요즘처럼 여유가 생기니 돈 빌려가라고 난리칩디다."
100억원 안팎이던 매출액이 최근 3~4년새 500억원을 넘어선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한 사장의 쓴소리다. 은행 대출관행이 사실 이렇다. 정작 필요할땐 깐깐하다가도 필요없을땐 온갖 부가서비스로 무장해 기업을 찾는다. 그러다 관련업황이 나빠질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자금 회수에 나선다. 아니면 금리를 높이거나.
은행 여신담당자들 역시 할 말은 있다. "과거 지점장이나 여신담당자들이 브로커를 끼는 등 소위 '촉(觸)'으로 대출하던 관행은 사라진지 오래다. 부실예측모형 등 전산에 입력된 시스템에 따라 대출규모와 기간이 딱 부러진다. 경영자의 경영능력 등 비계량요인으로 대출해줬다 결과가 안좋으면 끝이다. 연체와 부실, 일선 영업점에선 금기시돼 있고 책임소재도 분명하다."
사실 은행만큼 자체 지침과 내규에 따라 잘 짜여진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기업도 흔치 않다. 요즘같이 언제 몰아칠지 모르는 금융위기 등 글로벌 경제여건을 감안하면 어느 한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들이 은행원들이다.
이 때문에 은행 여신담당자들 중 이번 금융당국의 혁신안(?)이 큰 효과를 낼 것으로 보는 이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중소기업인들 또한 실효성이 있는 대책이 될 것이란 기대는 접는 분위기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요즘은 벤처캐피탈조차 벤처가 아닌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은행원 면책특례도 특례지만 한발 더 나아가 은행 대출금의 일정 비율을 중소기업에 활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게 개선안일 수 있다"고 전해왔다.
◆ "부실 면책해준다고? 그래도 어쩔수 없다"
한 시중은행 강남지역 지점장은 이번 정부 대책과 관련, "97년 외환위기 이후 모든 여신이 시스템화 됐어요.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기본 조건들 입력하면 대출규모와 기간이 정해집니다. 더 해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담보 역시 채권보전에 대한 당연한 근거구요. 담보를 받지 말라는 얘기는 신용대출로 간다는건데 중소기업 신용정보가 워낙 미약해 차칫 연체율과 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요. 현실적으로 당국이 내놓은 대책은 반영되기 어렵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선진금융이란 이름으로 도입한 이같은 부실예측시스템이 정작 자금이 급한 중소기업 대출액은 줄이고 금리는 올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또 다른 시중은행 강북지역 지점장도 비슷한 얘길 전해왔다. 그는 "재무제표 자체를 신뢰할 수 없는 중소기업에 대해 빗장을 열 순 없죠. 아무리 정부가 대출해주라고 해도 결국 책임은 은행이 지는 것 아닌가요. 과거에도 이같은 사례 부지기수였어요. 더구나 부실이나 연체율은 영업점과 직원 인사평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요. 그냥 선거철 앞둔 정부의 립서비스로 생각합니다"고 답했다.
면책 여부가 일선 은행지점에서 중기대출를 꺼려하는 근본 이유는 아니라는 얘기다. 은행원이 대출을 안해줘 중기 대출이 안되는 것도 아니고, 면책특례가 생겼다고 부책심의(부실이 발생한 기업에 대해 여신담당자에 책임을 묻는 회의)를 피해갈 것으로 생각하는 행원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리 직원 면책을 공문화하고 구체화해도 '여신심사 불철저'라는 평가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격이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이 부실을 그냥 지나쳐도 같은 사안에 대해 은행 내부에선 지나칠리가 없다고 확신하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중기담당)는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위해선 우선 금리가 낮아야 한다. 하지만 담보없는 소기업이 기술력과 성장성만으로 평가받기도 사실 불가능하고 설령 받는다해도 대출금리가 턱없이 높다. 또한 재무제표나 신용평가에 대해서도 착한 놈, 나쁜 놈 가려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중기대출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금융위의 혁신안을 두고 금융권 일각에선 '고육책'으로 풀이했다. 일단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 살을 도려내가면서 꺼내들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것.
한국금융연구원 고참급 박사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다들(은행들) 웅크리니 당국으로서도 도리가 없지 않나. 이 문제는 은행이 규정 바꾼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여신담당에게 면책준다해서 해결 안된다. 다만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은데, 이 정도로 이해합시다"고 했다.
◆ 금감원 검사와 금융위 정책 공조도 변수
금융위의 이번 개혁안이 정착 종합검사 등 일선 영업점에 대한 검사를 담당하는 금융감독원과 어느정도 정책공조를 이룰지도 변수로 지목됐다.
은행원과 마찬가지로 금감원 검사역들 역시 자체 성과평가 시스템이 있는 상황에서 향후 중기대출 부실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융위의 정책방향 때문에 금감원 검사가 쉽사리 넘어가겠느냐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한 여신담당자는 "금감원 역시 수십년간 해오던 검사역으로서 나름의 자체 성과평가방식이 있다"며 "금융위가 밀어부치는 정책방향을 그대로 실행하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금감원 검사역들의 평가기준은 금융회사에 대해 무거운 조치를 했다거나, 새로운 금융사고 사례를 적발해 향후 검사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준다. 검사시 사회적 파장이 있는 사안들을 지적했을 때도 고점이 매겨진다.
특히 여러 평가요소 중 계량화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 징계건수나 징계의 경중 여부가 중요한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정책방향이 정해지면 금감원으로선 따라가는 경우가 일반적이긴 하지만 금융회사 검사시 계량화할 수 있는 지적 건수나 징계의 경중 여부가 가장 납득하기도 쉽고 평가하기도 좋아 이런 부분들이 중시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금감원 역시 검사역 등 내부평가에 대해 다소 변화가 있어야 현장에서의 변화도 나타날 것"이라고 전해왔다.
▶ 주식투자로 돈좀 벌고 계십니까?
▶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