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문재인·안철수로 압축된 18대 대선의 '키워드' 분석
[뉴스핌=이영태 기자]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문재인 후보로 선출돼 18대 대선 지형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포함한 3강구도로 재편되면서 함축적인 메시지를 압축된 언어로 전달하는 '키워드 정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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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간 3자 구도로 압축됐다. |
수없이 많은 언론보도와 논평, 정치권의 공방 속에서 말 그대로 보석 같은 말 한 마디, 단어 하나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치인들에게는 핵심을 담은 키워드나 카피 하나로 유권자나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을 주고자 하는 욕망이 커진다.
어제 오늘 정치권에서 사용된 키워드 분석을 통해 현 정치권의 분위기를 감지해보자.
◆ '책임총리제'는 안 원장과의 공동정부 지향한 키워드
문 후보가 16일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내세운 많은 공약 중 눈에 띄는 키워드는 '책임총리제'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겠다"며 "책임총리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고 정당책임정치를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야권 단일화 후보 경쟁자인 안철수 원장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문 후보는 일찌감치 안 원장과 공동 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어 이날 연설문에서 사용한 '책임총리제'란 단어는 안 원장과 이룰 공동정부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까지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책임총리제란 말 그대로 국무총리가 헌법이 부여한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갖는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86조는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장관) 제청권과 해임건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국무위원을 임명하고 해임을 건의받은 국무위원을 해임할 수 있다.
헌법이 부여한 국무총리의 권한을 절차상의 문제로 보느냐, 아니면 실질적인 집행개념으로 보느냐에 따라 책임총리제가 실현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책임총리제가 제대로 구현된 것은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 정부' 초기가 유일하다 할 것이다. 당시 DJ와 JP는 공동정부 구성합의에 따라 각료제청권을 5:5로 행사했다.
그 외의 경우 국무총리는 대부분 실권 없는 얼굴마담 역할에 만족해온 것이 사실이다. 2004년 6월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의 취임과 함께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업무분담을 전제로 한 소위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의 구축 이라는 새로운 국정운영 모델이 제시된 바 있으나 대통령비서실과 국무조정실의 역할분담 문제 등이 불거지며 제도로 안착되지는 못했다.
문 후보가 도입하겠다고 밝힌 책임총리제의 방향은 DJP 연합과는 분명히 다를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는 지난 5월1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무등산 산행에 앞서 기자들에게 "안 원장과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지난 1997년 김대중, 김종필의 DJP 연합과는 다르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DJP 연합은 집권을 위해 정체성이 전혀 다른 세력과 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안 원장과 나는 이념ㆍ정체성이 거의 같다고 본다"며 "야권 대통합 운동할 때부터 (공동정부론을) 폈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가 16일 언급한 책임총리제의 밑그림은 오래 전부터 준비돼왔다는 말이다.
만일 '책임총리제'를 기반으로 문 후보와 안 원장 간의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당과 후보는 당연히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다. 아직까지 대선후보 양자대결에서는 박 후보가 안 원장이나 문 후보에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실제로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문 후보의 '컨벤션 효과'에 안 원장의 '대선출마 효과'가 더해진 시너지 효과의 크기는 예측하기 힘들다.
◆ 새누리당, '정당정치' 키워드로 견제구
야권단일후보 견제를 위해 새누리당이 들고나온 키워드는 바로 '정당정치'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1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강조했듯, 정당·책임정치를 반드시 이룩해달라"며 "정당은 후보를 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정치적 결사체다, 이런 결사체가 대선후보를 내지 않거나, 후보를 낸 후에 불출마해서 혼란을 일으킨다면 국민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제1야당인 민주당은 이미 경기도지사, 서울시장 후보도 내지 않은 바 있다"면서 "대선에서도 후보를 내지 않는다면 수많은 혈세를 받아 국고보조금으로 활용하는 제1 야당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이며 대한민국의 정당정치는 어떻게 될 것인지 함께 걱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은 민주당은 야권후보 단일화와 관계 없이 제1야당으로서 대통령후보를 반드시 배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상 문 후보는 불출마를 선언해서는 안된다는 퇴로차단용 견제구다.
'정당정치'란 키워드가 사실상 문 후보와 안 원장 간의 단일화를 무산시키기 위해 사용된 무기인 셈이다.
황 대표는 안 원장을 향해서도 "무당파에 기반을 뒀던 한 대선후보 예정자가 국고보조금을 받기 위해 이른바 '페이퍼 정당'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며 "이 또한 무당파들의 도덕적 기반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당정치'를 이용해 보다 직접적인 공격에 나선 이도 있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야권은 벌써부터 정체도 모를 공동정부론을 내세우고 상식에 어긋나는 각종 시나리오를 분출하고 있다"며 "대권욕에만 몰두하는 후보단일화는 묻지마식 권력야합이요, 정당정치에 조종을 울리는 후안무치한 정치담합"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0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인혁당' 발언으로부터 역사인식 논란이 제기된 상황에서 이제 정치권은 '책임총리제'와 '정당정치'란 키워드를 추가했다. 대선까지 남은 93일 동안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여의도의 '키워드 정치'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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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