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 관련 상품 트라우마...불완전판매 위험도
[뉴스핌=서정은 기자] 시장에 등장한 지 3년만에 펀드시장의 20%를 차지하고, 4년만에 순자산총액이 10조엔(한화 118조원)에 이른 일본의 더블데커(Double Decker)펀드가 한국 시장에는 없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산업구조를 비롯 여러 경제 환경이 비슷한 양국임에도 이 펀드에 관해서는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투자자들이 환 관련 상품을 터부시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외환위기와 키코(KIKO)사태 등을 겪으면서 환 관련 상품에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존재하고, '환 = 투기'라는 인식도 강한 데다 관련 상품을 판매해 본 경험도 부족하다는 얘기다.
29일 더블데커펀드를 처음 접한 국내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수익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고 평가했다. 기초자산에 환차익까지 이중 수익구조를 갖고 있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펀드가 국내에 출시된다면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른 채 판매가 이뤄지는 '불완전 판매'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블데커펀드처럼 통화선택형 상품들은 '보이지 않는 자산'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데다, 미래에 어떤 식으로 움직일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환 관련 상품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환은 투기적이어서 헤지를 해야하는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며 "증권사나 운용사 입장에서도 굳이 환 전문가를 영입해 환 자체에 투자하는 상품을 다루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 투자자들에 비해 더 보수적"이라며 "일본은 '와타나베 부인을 필두로 FX 마진거래가 대중화됐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투자자들도 펀드나 채권 상품에 가입할 때도 대다수가 환헤지를 원한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일본 투자자들은 엔화라는 국제 통용 화폐의 지위를 갖고 있고, 새 정부가 엔저를 고수하면서 환율 예측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의 환율은 그렇지 못하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일본처럼 '제로금리'로 인한 고수익 갈망이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없다는 것도 이유로 꼽혔다.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지만 국내 금리는 3~4%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금리가 더 하락한다면 환 투자에 대한 수요가 생겨날 것이라는 얘기다.
◆시장은 고수익투자를 향해 가고 있다.
대신증권은 일본 고수익채권을 개인이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우리다시본드' 중개서비스를 시작했다. 우리다시본드는 이자수익과 환차익을 노린다는 점에서 더블데크펀드와 유사하다. 하지만 더블데커펀드는 환이 투자의 키포인트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증권가 일각에서는 금융투자회사들의 이같은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환 투자 상품을 투자자들이 싫어할 것이라며 상품 개발을 더디하고, 브로커리지에만 집중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원은 "60개가 넘는 국내 증권사 대부분이 브로커지리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치열한 고민이 없다보니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겠다는 요구도, 의식도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환 투자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증권업계가 투자자들의 편견을 바꿀 생각은 안하고 투자자들 핑계만 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형기 금융투자협회 조사연구실 연구위원 또한 "저금리 시대에 맞춰 금융투자회사들이 적합한 투자상품을 개발하는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뉴스핌 Newspim] 서정은 기자 (love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