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다양한 우려 점검해야
[뉴스핌=노희준 기자] 은행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 위험이 증가한다(?)
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계좌이동제가 시스템 불안정성을 가져올 수 있다며 이 같은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특정 은행에서 신용위험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계좌이동제가 시행되고 있다면 계좌 변경이 손 쉬워져 대규모의 예금인출 사태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계좌이동제 시행을 앞두고 은행권에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계좌이동제란 고객이 신규 계좌를 개설한 B은행에 자동이체 연결을 신청하면 B은행에서 고객의 A은행 기존 계좌의 자동이체 해지까지 알아서 처리해주는 제도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오는 2016년부터 계좌이동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연구원과 금융당국에서 이 같은 주장은 다소 과장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계좌 이동제가 없다고 해서 뱅크런 상황에서 은행에 자기 이체계좌가 물려있다고 돈을 빼내지 않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계좌이동제로 은행간 고객 이동이 크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우량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은행입장에서 아무 고객에게나 계좌이동을 제안하지 않는다"며 "시중 은행 간 금리 차별화가 별로 없는 상황이고 은행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보고 고객이 계좌를 옮길지도 생각할 문제"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금융위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선진국인 호주 등에서도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모두 심도있게 검토했다"며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예금자보호제도가 안착된 데다 검토를 해봐야 하지만, 계좌이동 시에도 버튼 누르듯 계좌이동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좌이동제가 가져올 뱅크런 우려는 비약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계좌이동제가 뱅크런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완전경쟁시대 진입을 예고하는 계좌이동제를 은행권이 반기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시각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계좌이동제는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주자는 취지이고, 좋은 측면이 많은데 (가능성이 희박한) 극한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것은 금융기관이 계좌이동제를 정말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뱅크런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좌이동제 시행으로 유동성 리스크가 확대될 우려는 제기되는 실정이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수시입출식예금 규모의 변동성 증가에 따라 유동성 리스크와 관련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계좌이동제 도입으로 적정예금 규모 확보 필요성이 확대되면서 수신금리 경쟁이 발생하고 은행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면서 대출금리가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선(善)한 목적 추구가 항상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대출금리 인상 가능성이든, 뱅크런 우려든 일부 부작용을 침소봉대할 필요도 없지만, 의도치 않은 다양한 결과의 발생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은 정책실행의 준비단계부터 계좌이동제 도입과 관련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제도도입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