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줄다리기서 채권단이 밀려
[뉴스핌=이영기 기자] 최근 채권단 일부에서는 정부가 채권단에 힘을 실어줘야만 대기업그룹의 실질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회사채 차환 지원을 계기로 구조조정안을 내놓고 이를 추진하고 있는 현대그룹 및 동부그룹 등과의 줄다리기서 채권단이 그룹들에게 밀려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칠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다.
어렵게 일군 사업을 지키기 위해 물밑으로는 선거 등 정치상황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활용하는 분위기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채권단의 입장이다.
7일 현대그룹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내놓은 현대증권의 매각주간사를 맡은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지금 추진하는 현대증권 매각은 순수하게 현대상선 보유 지분을 처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에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현대증권을 매각하지만 산은은 M&A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매각주간사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매각을 위한 시장 태핑(Tapping)에 이미 착수한 상태로, 산은은 매각가능성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투자증권, 동양증권이 매각된 상태이지만, 다른 매물도 일부 있어 특별하게 낙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면서 "하지만 현대증권 나름의 특성도 있어 매각을 비관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증권의 매각을 두고 M&A업계에서는 결국은 매각주체인 현대그룹이 인수희망가격을 보고 매각을 결정할 것으로 본다.
이미 산은에 재산신탁을 해 2000억원 내외의 자금을 대출받아 시간을 벌어 놓은 상태이라서 결정권은 현대그룹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당초 계획에서 벗어날 개연성을 지울 수는 없다는 것.
이 보다 산은에게 더 힘겨운 대상은 동부그룹으로 알려졌다. 산은이 포스코에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 당진을 인수해 줄 것을 제안한 데 대해 동부그룹은 제한적 경쟁입찰로 자산들을 매각해야 한다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산은 측은 "제한 경쟁입찰로 하면 성사 가능성도 낮고 신속한 매각 또한 어렵다"면서 "매수자금의 70% 이상을 산은 측에서 지원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봐도 쉽지 않는 선택"이라고 동부그룹의 반응에 대해 곤혹스러워 했다.
특히 산은은 지방선거 등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활용해 구조조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려하는 구조조정 그룹들의 속성을 우려했다. 구조조정에서 실기하면 그 이후 채권단의 부담이 커지고, 이는 사회적인 비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산은의 논리다.
한 구조조정 전문가는 "정부차원에서 구조조정을 수행해온 산은으로서는 정치력이나 사회분위기를 등에 업고 버티다가 시기를 놓쳐 구조조정에서 난항을 겪은 경험이 많을 것"이라며 "결국은 믿을 구석이 없어져야 채권단에서 제시하는 구조조정이 먹혀들어간 경우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룹입장에서는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그간 어렵게 일군 기업을 처분해야 하는 고통이 있겠지만, 구조조정에서는 타이밍도 중요하다는 것이 채권단 우려의 요체로 보인다.
이 구조조정 전문가는 "이전과 달리 채권단과 구조조정 대상 그룹간의 줄다리기에서 채권단이 밀리는 양상"이라며 "채권단이 구조조정안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절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동부그룹은 이날 최연희 전 의원(4선)을 건설-디벨로퍼 분야 회장 겸 농업-바이오분야 회장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동부는 최 회장이 그 동안 공직 생활과 의정활동을 통해 쌓은 폭넓은 안목과 경륜을 바탕으로 동부의 건설, 물류, 발전 등 디벨로퍼 사업과 농업사업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회장은 강원도 동해 출신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오랜 검찰 생활을 거쳐 정계에 입문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 법제사법위원장,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뉴스핌 Newspim] 이영기 기자 (00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