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강필성 기자] 지난 10일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 심리로 열린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1600억원대 탈세·횡령 혐의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는 이례적인 증인신청이 나왔다. 공판의 마지막 절차인 피고인신문과 최후진술, 구형을 남겨둔 상태에서 이 회장 측에서 예정에 없던 새로운 증인을 두 명 신청하고 나섰던 것.
그 자체도 이례적이었지만 더 독특한 것은 그 증인의 면면이다. 이날 이 회장 측이 재판부에 채택해 달라고 요청한 증인은 A교수와 B문화평론가였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학계 교수의 증언을 통해 한국 경제에서 CJ그룹의 위상에 대해 직접 듣고 싶다”며 “또한 대중문화계에서 CJ그룹의 역할에 대해 문화평론가를 통해 확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당황한 것은 재판부였다.
재판부는 “학계의 의견이 있다면 논문과 의견서를 제출해 달라”고 말했지만 변호인 측은 “논문은 없지만 이들은 모두 CJ그룹과 같이 일을 했던 인물로 CJ그룹에 대한 이해가 깊다. 증언대에 서야한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이 회장 측의 증인 채택은 변호인의 강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됐다.
재판부는 “증인신문이 진행되더라도 검찰에서 증언에 대해 탄핵할 부분이 없다”며 “CJ그룹의 경제적 위치, 문화적 위치를 증언하는데 위증을 경고하고 신문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재판부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변호인 측이 이 증인 신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 측은 CJ그룹이 국내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고 CJ그룹의 경영을 담당해온 이 회장의 구속은 우리 경제에 적지않은 손실이라는 점이다. 더불어 대형 멀티플렉스 1위 사업자인 CJ CGV, 종합컨텐츠기업 CJ E&M, 종합유선방송사 CJ헬로비전, 다수의 케이블채널 등을 보유한 CJ그룹과 이 회장이 대중문화계에서 얼마나 비중이 있는 지 강조하려고 한 의도로 풀이된다.
사실 이런 주장은 형사재판에 불려나간 재계 오너들의 변론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기업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해달라는 회유와 ‘실형에 따른 우리 경제적 피해가 크다’는 협박이 반반씩 섞인 이 논리는 이미 법정에 선 재계 오너들의 교과서 같은 변론이었다.
물론 지난해 신장이식 수술 이후 급격한 건강 악화와 1심의 실형을 받은 이 회장의 참담한 심정을 예상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달 이 회장의 항소심 3차 공판에서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이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신청과 관련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 오너라고, 재벌 총수라고 해서 더 우월한 대우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오너라고 더 나쁜 처우 받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런 변호인의 주장 때문인지 이 회장은 지난달 재판부로부터 구속집행정지를 허락받았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입장도 바뀌는 것일까. 결국 이 회장 측이 기각된 증인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대기업 오너이기에 가능했던 ‘재벌 프리미엄’이 아닌가 싶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