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인수합병 빈발로 방어수단 필요성 대두..국내는 '1인 1의결권' 원칙 넘어야
[뉴스핌=김선엽 기자] 삼성물산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간의 공방 이후 기업의 경영권을 제도적으로 방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재계를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과 홍콩 등 주요 국가에서 앞다퉈 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차등의결권제도나 포이즌필 등의 경영권 방어수단이 '1인 1의결권'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만큼 우리 법체계상 수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제도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차등의결권, 세계 주요국 속속 도입 vs. 상장 대기업에는 적용 곤란
차등의결권제도란 1개의 주식마다 1개의 의결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식마다 차등적으로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일반적으로 경영권 보호장치로 활용되지만 1주 1의결권이라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적대적 인수합병이 만연함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제도적으로 확립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1994년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현재 200여개 기업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워런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는 일반주에 해당하는 B형 주식과 복수의결권이 인정된 A형 주식을 발행했는데 A형 주식은 B형 주식 대비 의결권은 200배, 기타 권리는 30배를 인정받는다.
유럽 역시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차등의결권제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국가는 명시적으로 복수의결권 주식을 인정하고 있다. 또 그리스, 스페인 등의 국가는 미국과 같이 1주 1의결권 원칙이 임의규정에 불과해 개별 회사 차원에서 차등의결권제도 도입이 가능한 상태다.
홍콩의 경우 201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2013년 알리바바 유치에 실패하면서 차등의결권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알리바바는 IPO 당시 마윈 회장의 경영권 보장을 위해, 10%의 지분율을 가진 창업자가 이사회 과반수에 대항하는 후보를 추천하는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홍콩거래소에 요청했다. 하지만 홍콩거래소는 1주 1의결권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결국 알리바바는 뉴욕증권거래소를 택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2013년 5월 증권거래소의 경쟁력 강화와 상장기업의 유연한 자본조달이란 목적을 내세워 1주 1의결권 원칙을 폐지하고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는 회사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일정 수의 주식을 1단원으로 해 1의결권을 부여하는 단원주, 거부권부주식, 의결권제한주식 등 다양한 종류의 주식 발행을 인정하고 있다.
단원주란 일정수의 주식을 하나의 단원으로 묶어 1개의 의결권만을 부여하는 제도로 상대적으로 단원주가 아닌 보통주가 다수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1주 1의결권 원칙이 도전받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이 명문화돼 있어 차등의결권 도입이 불가능하다. 개별기업차원에서 차등의결권을 정관에 도입하더라도 무효라는 것이 판례와 학계의 일관된 견해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1주 1의결권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기업의 유연한 자금 도달 및 벤처 기업의 IPO 활성화를 제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강대섭 교수는 "복수의결권주식은 IT기업이나 벤처기업 등에 한해, 기업공개 상장에 대비하여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하는 등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상장회사에서 그룹의 경영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 포이즌필, 효율적 방어수단이지만 '1인 1의결권' 장벽 넘어야
차등의결권제도와 함께 또 하나의 경영권 방어제도로 꼽히는 포이즌필 역시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포이즌필이란 회사의 경영진이 공격자를 제외한 주주들에게 회사의 신주 또는 이후 합병하는 회사의 신주를 매입할 수 있는 내용의 콜옵션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보통주 100만주를 발행하고 있는 회사에 대해 공격자가 25만주를 공개매수한 경우 이사회는 공격자를 제외한 주주를 대상으로 주당 보통주 2주씩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부여하는 포이즌필을 발행한다. 이렇게 되면 전체 주식수는 250만주가 되고 공격자의 지분율은 25%가 아닌 10%로 줄어든다.
일본은 2001년 개정상법에서 신주예약권을 도입(제240조 이하)해 포이즌필의 발행 가능성을 열어뒀고 프랑스에서는 2006년 상법개정에서 BSA(주식인수선택권)를 도입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의 경우에 명시적인 규정은 없으나 신주예약권의 발행이 허용된다고 풀이하는 견해가 다수다.
포이즌필은 자사주 매각, 제 3자 배정 유상증자 등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게다가 주주 권리 보호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경영진이 무능해 공격자 외에 여타 주주도 경영진 교체를 원할 경우 경영진이 포이즌필을 사용해도 주주가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의도를 갖춘 주주와 여타의 주주를 차별해 포인즌필을 발행하는 것이 회사법 원칙에 비춰볼 때 수용 가능한가라는 법적인 문제가 남는다.
서울대학교 송옥렬 교수는 '포이즌필의 도입 가능성'이란 논문을 통해 "(발행)증권의 내용을 이사회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불확실성이 높고 주주 평등의 원칙을 대단히 중요한 회사법상의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 등이 모두 (우리나라의) 포이즌필 도입에 있어 상당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