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윤원 기자] “연극 ‘춘천 거기’는 두말 할 것 없이 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역으로 시작했을 때가 생생해요. 처음 포스터 귀퉁이에 희미하게 뒷모습만 나왔던 제가 10년 지나 포스터 중앙에 나왔죠. 그게 되게 신기해요.”
배우 김강현이 2005년 초연 이후 10주년을 맞은 연극 ‘춘천 거기’에 남다른 소회를 드러냈다. “무대 자체는 10년 전과는 많이 변했어요. 초연에 비해 무대에 돈을 많이 썼죠(웃음). 전에는 계단 몇 개 놓고 시작했던 게 지금에 이르렀어요. 2015년 공연에서는 ‘좀더 방처럼 꾸며보자’는 노력이 있었어요. 10년 전 무대는 방보다는 뭐랄까, 지금의 현충사 장면을 위주로 꾸몄던 것 같아요. 전체적인 색감도 녹색으로 했던 것 같고. 지금은 극장 자체가 높이가 낮아서 여러 방식의 응용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무대와는 달리, 대본상 변화는 크지 않다. 사랑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정서라는 것을 ‘춘천 거기’가 여실히 보여준다. 이와 함께 유독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사랑’의 현실적인 면면을 꼬집는 날카로움이다. 때론 처절하고 때론 찌질한 우리네 사랑의 단면이 절절한 공감을 유발한다.
“(대본은)시대에 맞게 어느 정도 각색됐어요. 예를 들어, ‘지현우 팬클럽’ 대신 ‘김수현 팬클럽’으로 대사가 바뀌었죠. 하지만 10년 전, 선배들이 주인공이었을 때 만들었던 굵직한 사연들이 지금도 온전히 쓰이고 있어요. 지금 봐도 (10년 전 만들었던 이 줄거리에)공감이 많이 가요. 대사에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명언들은 지금 들어도 아름답고요. 이 작품이 이렇게 좋았으니 초연 당시 상을 받을만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10년 전에 어떻게 이렇게 잘 썼나 싶어요(웃음).”
연극 ‘춘천 거기’는 2005년 동숭아트홀 초연 당시 연출, 배우, 스태프 등 젊은 연극인 12명이 100만원씩 내고 백만 관객을 모으겠다는 ‘백만송이 프로젝트’로 야심 차게 시작했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고도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고, 이듬해인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주최하는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춘천 거기’에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이 날실과 씨실처럼 켜켜이 엮여 있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는 명수와 선영, 위태로운 의심과 불안 속 사랑을 보여주는 영민과 세진, 우정과 썸의 사이를 오가는 수진과 병태,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풋풋하고 귀여운 커플인 응덕과 주미, 수진을 짝사랑하는 지환이 등장한다. 이들 9명의 등장인물이 춘천 펜션에 모이면서 비밀스런 감정의 전쟁이 시작된다. 로망과 현실의 교차지점, ‘춘천’에서 벌어지는 사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왜 ‘춘천’이냐? 아무래도 ‘춘천’하면 대학생들 많이 가는 곳이기도 하고 사랑이 이뤄지는 장소란 생각들이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가평이나 대성리 보단 춘천에서 ‘대학생들의 사랑’같은 키워드를 연상시키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김한길)연출님이 춘천을 좋아하는 것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춘천은 (경춘선의)종창지점이니까요. 종착역까지 가는 느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사랑의 종착이 될 수도 있고, 종착이면 또 사랑의 시작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10년 전 초연 당시 영민 역에 원캐스트로 출연한 김강현은 해당 캐릭터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극 중 영민은 여자친구 세진의 과거에 집착하며 스스로와 여자친구를 모두 괴롭게 하는 인물이다. 영민과 세진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20대의 사랑을 보여준다.
“영민이요? 그냥 찌질이죠. 여자친구의 과거를 캐는 캐릭터인데, 초연 때부터 그 캐릭터가 저랑 되게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민이가 여자친구의 과거를 캘 때, 제 목소리의 독특함으로 인해 더 짜증스럽게 나올 것 같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목소리 톤에 꽤 애를 썼던 캐릭터에요.”
올해 나이 39살. 20대 영민을 연기하기에 앞서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란 각오를 했다는 김강현은 “잘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무대에 오른다. 지금도 매일이 연습이고, 매 공연이 발전을 해가는 과정이란다. 연극 ‘춘천 거기’는 오는 30일까지 유니플렉스 3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뉴스핌 Newspim] 글 장윤원 기자(yunwon@newspim.com)·사진 스토리P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