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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태칼럼] 박 대통령의 외치가 내치보다 평가받는 이유

기사입력 : 2015년09월04일 14:58

최종수정 : 2015년09월04일 14:58

중국 전승절 참석과 남북합의에는 ‘파트너십’이 존재했다

8·25 남북합의로 임기 후반기를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다.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맞춘 박 대통령의 방중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에 필요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방중은 특히 동맹국인 미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의 독자적 대중관계 형성, 즉 균형외교를 사실상 인정케 하고 중국으로부터는 한민족에 의한 미래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미국의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사설에서 “전승절 참석을 결정한 각국 정상들은 대부분 독재자이거나 중국의 경제 원조를 받는 경우”라며 “다만 한국의 경우 중국과의 교역을 늘리고 북한의 고립이라는 목적을 갖고 추진된 예외 사례”라고 묵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아무래도 심기가 불편한 일본 언론들은 한·중·일 정상회담의 올 가을 개최를 이끌어낸 박 대통령이 그동안의 대일 강경외교에서 벗어나 “서구 주요국과 일본의 정상이 불참하는 행사에 애써 참석함으로써, 부친의 과거를 ‘청산’하고 남은 임기 후반의 대일외교에서 ‘자유로운’ 입장을 펼쳐나가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교도통신)”고 분석했다.

중국 언론들은 동북아 외교의 측면에서 봤을 때 박 대통령의 방중 자체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일각에서는 동맹국인 미국의 보살핌이 없는 상태에서 박 대통령이 이번 열병식 참석을 결정한 것은 동북아 외교 판도에 변화가 생긴 것을 의미하며 한국 정부가 현재 과거와는 다른 외교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것(대공보)”이라고 풀이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을 대표하는 언론들의 시각차가 존재하지만 미·중·일·러 틈바구니 속에서 한반도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박 대통령의 균형외교 자체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기대하고 호평한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Scott A. Snyder) 전미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같은 날 협회와 포브스지에 동시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서 박 대통령의 방중은 한국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궤도에서 점차 증가하는 구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나이더는 “그러나 박 대통령이 중국의 덫에 걸려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박 대통령이 북·중 관계가 전례 없이 느슨해진 틈을 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굳히고자 하는 게 맞을 것”이라며 북중관계에서 김정은의 부재로 생긴 공백을 채운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중국의 외교적 성과보다 크다고 높게 평가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인 지난달 25일 북한의 유감표명이 담긴 남북합의를 이끌어내며 한반도의 군사대결 위기를 모면하는 데도 성공했다.

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가 나름대로 성공적인 외치(外治)로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내치(內治)다.

박 대통령의 집권 전반기는 3명의 총리 후보 낙마와 2명의 총리 자진 사퇴로 대표되는 인사 실패로 점철됐다.

현 정부의 미숙한 국민소통과 위기관리 능력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등을 거치며 부끄러운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박 대통령이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3대 핵심과제로 제시한 경제민주화와 정치쇄신, 국민대통합은 ‘국민이 행복한 희망의 새시대’라는 국정비전 만큼이나 공허한 외침으로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외치는 괜찮은데 내치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픽=홍종현 미술기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치에서의 ‘파트너십’ 부재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외치에선 평등한 파트너를 인정하는 박 대통령이 내치에선 불평등한 ‘주종관계’로 국회의원이나 측근들을 대한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그렇다보니 측근들은 대통령 입만 바라보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는 ‘배신의 정치’가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삼권분립을 분명히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남북합의 성과를 설명한다고 부르자 1박2일로 연찬회에 참석중이던 새누리당 국회의원 백수십명이 행사를 중단하고 ‘쪼르르’ 청와대 오찬에 참석했다. 당청관계에 파트너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표적 사례다. 군주제나 총통제가 아닌 정상적인 공화국의 입법부와 행정부 관계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8·25 남북합의가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박 대통령이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가이드라인을 일정 부분 양보하고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했다”는 두루뭉술한 사과 표현을 수용한 데 있다. 재발방지를 담은 합의조항은 더 애매모호하다.

박 대통령이 성에는 차지 않지만 북한이라는 파트너의 특수성과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을 인정했기에 남북이 ▲당국 회담 개최 ▲이산가족 상봉 ▲민간교류 활성화 등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2년6개월을 보낸 박 대통령이 남북회담과 방중에서 얻은 ‘파트너십’이란 교훈을 남은 2년6개월 동안 내치에서도 선보이길 기대한다. ‘거버넌스’ 시대의 대통령에게는 신하나 부하가 아닌 파트너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에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국민은 있어도 대통령보다 낮은 국민은 없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선임기자 (medialy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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