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속보

더보기

[이영태칼럼]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를 기리며

기사입력 : 2016년02월02일 16:08

최종수정 : 2016년02월05일 13:59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광주항쟁 비디오 막전막후…“두 눈은 좌우를 보라고 있는 것”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세계에 처음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 씨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5·18기념재단은 힌츠페터 씨가 지난달 25일 독일 북부 라체부르크에서 숨졌다고 2일 밝혔다.

36년 전 독일 공영방송 ARD 일본특파원(한국특파원 겸직)으로 광주항쟁을 직접 취재한 힌츠페터 씨의 필름은 그해 5월 22일 ARD를 통해 전파되며 전 세계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광주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외부 세계에 알린 증거물은 힌츠페터 씨의 자료가 유일했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죄로 사형판결을 받은 후에는 중국특파원이었던 동료와 함께 1980년 9월 22일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45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한국 군사정권의 폭정을 고발하기도 했다.

‘광주비디오’ 제작자 힌츠페터 씨를 직접 만난 것은 13년 전인 2003년 9월 서울 수유리 아카데이하우스에서다. 그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해외민주인사 초청행사 참석차 주치의이자 여자친구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스태트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힌츠페터 씨의 방한은 일부 언론에 보도되긴 했지만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귀국에 가려져 큰 주목을 끌진 못했다.

힌츠페터 씨는 당시 왜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했느냐고 묻자 “개인적으로 자유를 찾기 위한 민주화운동에 많은 관심이 있다”며 “두 눈이 있는 것은 좌우를 보라고 있는 것이고 코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 방문 1년 뒤인 2004년 심장병 수술을 받고 쓰러진 뒤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듬해 병세가 다소 호전된 후에는 다시 한국을 찾아 “가족의 만류로 광주에 묻히기는 어려워졌지만 다른 상징적인 방법으로 광주와 인연을 간직하고 싶다”며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광주에 묻히고 싶은 바람을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담은 봉투를 5·18기념재단에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광주광역시는 당시 힌츠페터 씨가 사망하면 5·18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이 지금도 자랑스럽다”고 했던 영원한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 씨와 13년 전 나눴던 대화 내용 일부를 다시 들춰봤다.

◆ 힌츠페터 씨의 ‘광주비디오’가 나오기까지

위르겐 힌츠페터 씨를 2003년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만났다. 가운데 사진 찍는 사람이 힌츠페터 씨의 주치의이자 여자친구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스태트다.<사진=이창길 기자>

- 해외 민주인사 중 한 사람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감상은?

“3년 전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이번에 인천공항에 도착해보니 한국의 경제적·민주적 발전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북한과 접경지대에 그토록 큰 공항을 세웠다는 것이 놀라웠다.”

- 1986년 서울 광화문 시위 취재 중 목과 척추에 부상을 당해 고통이 심했다고 들었는데 건강상태는?

“(목을 가리키며) 지난 5월 목뼈 속에 들어있는 플라스틱을 교체했다. 처음에는 부상으로 인해 말도 할 수 없었고 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어 글을 쓸 수도 없었으며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 지금도 목과 팔을 사용하는데 불편함을 느낀다. 밝힐 수 없는 고통도 있다.”

- 이력서를 보면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학업을 중단하고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유가 뭔가?

“TV에 책임이 있다.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하면서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부업으로 방송국에서 스튜디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던 중 아비투어(독일의 대학교 입학시험)를 마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카메라맨을 모집해 학업을 중단하고 18개월간의 실습과정을 거쳐 카메라맨이 됐다. 당시만 해도 TV라는 매체가 뉴미디어로 각광받았었기 때문에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나와 함께 카메라맨 생활을 시작한 동료가 4명 있었는데 대학교수가 되는 등 모두 큰 사람이 됐다.”

- 위험을 무릅쓰고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자유를 찾기 위한 민주화운동에 많은 관심이 있다. 두 눈이 있는 것은 좌우를 보라고 있는 것이고 코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자유를 억압받았던 당시 한국의 어려운 상황과 민주화운동은 독일을 비롯한 서방세계에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학생들은 누구보다 빨리 민주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유를 추구한다. 나 또한 대학생들의 주장에 공감해 여러 동료들과 함께 광주비디오를 만들게 된 것이다. 압박도 받았으나 행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지만 민중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 당시 광주에서 찍은 필름을 독일까지 보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외국 기자가 당시 한국에 들어오면 KOIS(Korean Overseas Information Office, 지금의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에 가서 프레스카드를 받고 어디에서 무엇을 취재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등을 밝혀야 했다. 그러나 나는 80년 5월 19일 광주 취재를 위해 한국에 도착했을 때 KOIS에 가지 않고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즉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허가를 받고 광주를 취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차를 타고 바로 광주로 내려갔다. 내가 행운이 따랐다고 말하는 것 중에는 당시 김사복씨란 운전기사를 만난 것도 포함된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차량은 독일 차인 오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주에 도착했을 때 계엄군이 더 이상 갈 수 없다며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내가 그 때 코리아헤럴드가 보도한 한 기사를 가리키며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야겠다고 하자 그들은 논길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못 가길 바랐던 것 같다. 돌아가는 길에 운전기사가 샛길을 찾아냈고 다시 군대를 만났다. 나는 당시 우리 일행이 길이 엇갈린 부장을 찾으러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꾸며댔는데 군인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를 들어가게 했다. 광주에서 나는 학살현장 등을 10롤의 필름에 촬영했는데 어렵게 군 검문을 통과해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마지막 순간에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당시에 공항에 있었던 한국 공무원들도 민주화를 원했기 때문에 심한 검문은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찍은 필름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알면서도 한쪽 눈을 감아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일본 공항에 도착해 조수에게 필름을 넘겨주었고 독일 공영방송 ARD와 협약을 맺고 있던 일본 방송이 롤로 돼있던 필름을 방송용으로 바꿔 위성으로 독일로 보냈다. 필름을 넘기면서 나는 독일 방송이 먼저 필름을 사용하고 난 후에야 다른 나라들도 방송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왜냐하면 당시 그 자료는 그야말로 왜곡되지 않은 유일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신속히 진실을 알릴 수 있었던 일이 지금도 자랑스럽다. 테이프를 넘긴 후 바로 다음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신 전화 팩스 등 모든 것이 불통이었기 때문에 한국 상황을 알기 위해선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언론보도들은 모든 것이 왜곡됐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국 언론보도도 번역을 해 읽어봤는데 모든 것들이 왜곡돼 있었다. 5월 23일 다시 광주로 들어갈 때 외국 신문들을 몰래 갖고 들어가 광주시민들에게 나눠줬다. 그후 광주에서 찍었던 필름들을 갖고 동료였던 베르트람 중국특파원과 함께 광주항쟁에 대한 4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우리는 당시 다큐멘터리를 독일 본사에 넘기면서 그 필름 중 일부라도 편집하거나 삭제하면 일을 그만 두겠다고 협박했다. 동료인 베르트람은 이번에 같이 한국에 오려했는데 호주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오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 자유와 민주화를 선물한 고 힌츠페터 씨의 명복을 빈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선임기자 (medialyt@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스키즈, K팝 첫 美 빌보드 8연속 정상 [서울=뉴스핌] 최문선 기자 =테이프 '두 잇'(SKZ IT TAPE 'DO IT')'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K팝 최초 '빌보드 200' 8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30일(현지시간) 공개된 빌보드의 차트 예고 기사에 따르면, 이번 앨범은 12월 6일 자 '빌보드 200'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빌보드 200 8연속 1위를 차지한 그룹 스트레이 키즈. ryuchan0925@newspim.com 이로써 스트레이 키즈는 자체 기록이었던 K팝 최초 7연속 1위를 넘어, 통산 8연속 1위를 달성하게 됐다. 스트레이 키즈는 2022년 3월 미니 6집 '오디너리'를 시작으로 미니 7집 '맥시던트', 정규 3집 '★★★★★(5-STAR)', 미니 8집 '락스타', 미니 9집 '에이트', 스페셜 앨범 '스키즈합 힙테이프 - 합(SKZHOP HIPTAPE - 合 (HOP))', 그리고 지난 8월 발표한 정규 4집 '카르마'까지 연이어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하며 막강한 글로벌 영향력을 입증해왔다. 1956년 3월 시작된 '빌보드 200' 약 70년 역사에서, 첫 1위 진입 이후 여덟 작품을 연달아 정상에 올린 아티스트는 스트레이 키즈가 최초다. moonddo00@newspim.com 2025-12-01 10:53
사진
국힘 운명 걸린 2일 추경호 영장심사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국민의힘이 오는 2일 당 진로의 중대한 분수령을 맞는다. 추경호 의원에 대한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따라 추 의원은 물론 당의 운명이 결정된다. 출구 없는 터널에 갇히느냐, 아니면 희망의 출구를 찾느냐는 영장 발부 여부에 달렸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국민의힘은 내란 정당 프레임에 갇혀 사실상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승리도 요원해진다. 반대로 영장이 기각되면 내란 정당 프레임에서 벗어나 비상계엄 이후 1년간 계속된 수세 국면에서 탈출할 수 있다. 대대적인 역공이 가능해져 지방선거에서 한판 승부를 겨뤄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열린 국민의힘 긴급의총에서 의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0.30 choipix16@newspim.com 추 의원의 구속 여부는 비상계엄 1년을 맞는 3일 새벽에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추 의원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에 협조했는지 여부다. 추 의원의 구속 여부에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는 이유다. 추 의원 구속 여부에 따라 "국민의힘을 위헌 정당 해산으로 몰아가려는 내란몰이 정치공작"(추 의원)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의원 총회) 장소를 변경한 것이 확인되면 내란의 중요 임무에 종사한 내란 공범"(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인지가 가려지는 것이다.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법리적으로도 위헌 정당 해산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그만큼 정치적 파장은 엄청나다. 구속 여부에 따라 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한 당은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야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추 의원 영장 심사는 2023년 이재명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표) 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 대통령은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와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등의 혐의로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해 구속 심사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해 영장 심사를 받는 추 의원과 닮은꼴이다. 당시 이 대통령에 대해 영장이 발부됐다면 이 대통령은 구속됐을 것이고 민주당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 대통령은 영장 기각으로 기사회생했고, 민주당도 살길을 찾았다. 추 의원과 국민의힘도 구속 여부에 따라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이다. 우선 추 의원에 대한 영장이 발부되면 국민의힘은 내란 정당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대해 대대적인 내란 정당 공세를 펼 것이다. 내란 정당 심판론은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이다. 국민의힘은 정당 해산이라는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추 의원이 구속되면 당시 지도부에 속했던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수사 대상에 오른 의원은 1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일부도 사법 처리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내 갈등도 불거질 수 있다. 이미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배현진, 김재섭 의원 등 소장파 의원은 당 지도부에 사과 메시지를 요구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단 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20여 명 안팎이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배 의원은 지난 29일 페이스북에 "진정 끊어야 할 윤석열 시대와는 절연하지 못하고 윤어게인, 신천지 비위를 맞추는 정당이 돼서는 절대로 절대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눈길조차 얻을 수 없다"며 "윤석열 시대와 절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당원 게시판(당게)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당 지도부가 한동훈 전 대표를 겨냥한 당 게시판 논란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한 전 대표는 "당을 퇴행시키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당게 논란과 사과 반성 메시지 불협화음이 맞물리면서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란 정당 프레임에 갇히고 여기에 당내 갈등까지 겹치면 중도층 공략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여론 조사에서 전국적으로 상당한 격차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추 의원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면 국민의힘은 내란 정당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완전히 탈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프레임은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에 대한 공격에 나서겠지만 내란 정당 공세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일단 기사회생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여권에 대한 대대적인 역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3대 특검을 앞세운 민주당의 내란몰이가 입증됐다고 여권을 몰아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 지도부가 당내 갈등을 털어버리고 중도 공략에 나설 경우 지방선거 구도를 혼전 구도로 만들 여지도 없지 않다. 추 의원의 구속 여부가 적어도 연말 연초 정국의 향방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국 주도권은 물론 지방선거 구도까지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leejc@newspim.com 2025-12-01 06:0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