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 17조원 흑자지만, 예산 설정에선 '적자'
[세종=뉴스핌 이진성 기자] 정부가 국민들에게 과도한 건강보험료를 부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건강보험 예산을 높게 설정해 국민의 세금은 높이는 반면 국고 지원은 낮추고 있다는 것이다.
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용익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보건당국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정부가 건강보험 지원금을 축소하고 있다. 또 오는 2018년부터는 국고 지원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어 자칫 국민들의 건보료 부담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도 대두되는 상황이다.
실제 이 같은 상황을 뒷받침하듯 정부는 올해 국고 지원을 정상적인 기준보다 7040억원 낮췄다.
이런 정부의 건강보험 예산 축소는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보건복지 이슈&포커스'에 실은 '건강보험 국고지원방식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정부가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의 기준이 되는 예상수입액을 낮게 책정해 국고지원금을 하향조정하는 방식으로 2007~2014년 8년 간 10조5341억원을 적게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의 재원은 기본적으로 국민(가입자)이 납부하는 보험료다. 다만 건강보험료 절반을 회사에서 내줄 수 없는 지역가입자를 위해 정부가 건강보험료의 일부를 부담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국고지원을 줄인 비용이 다시 국민들에게 부담된다는 것이다. 건보료는 2009년 동결이후 매년 인상됐다. 특히 2011년에는 인상폭이 5.9%에 달했다. 그 이후로도 매년 1%수준으로 올랐다.
하지만 이는 건보료 재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건보료 인상이 본격화된 2011년부터는 매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누적 흑자는 17조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건보료가 인상되는 요인은 정부의 예산 설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보료 예산안을 심사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연간 예산을 '연 예산+반년치를 적정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공단은 최근 5년간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반년치의 여유금이 없다는 이유로 올해에도 건강보험료를 0.9% 올렸다.
더구나 2018년부터는 국고 지원도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국민건강증진법의 관련 규정이 2017년12월 31일까지가 시한이기 때문이다. 국민건강증진법이 만료될 경우 예결위 기준에 따라 국민의 건보료 부담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건강보험이 민영화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예컨대 2015년도 보건복지통계연보를 살펴보면 2014년 건강보험 재정에서 보험료로 걷힌 금액은 41조6000억원이다. 이 기간 건강보험으로 지출된 총액은 44조7000억원으로 정부가 보조한 금액은 3조원 안팎이다. 매년 건보료가 예결위 기준을 근거로 인상된 점을 고려하면 정부는 직전년도 지원한 금액 조차 일정부분 회수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지적에 관계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 등에서도 정부의 예산설정안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반년치를 여유분으로 두는 기준 탓에 국민 부담 증가가 불가피하고, 정부가 지원금을 줄이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부담을 떠안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전문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건강보험 체계가 부족한 국가에서도 건강보험 재정에 30%에 달하는 국고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보장성을 강화한다고 강조하지만 국고 지원을 줄이고, 예산 설정을 과도하게 잡아 국민들의 세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일각에선 정부의 지원 없는 건강보험은 민영화와 다를 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