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의료기기 허용문제는 사실상 논의조차 안돼
[세종=뉴스핌 이진성 기자] #대장암이 폐와 뼈로 전이된 이순자(가명, 여·69)씨는 수술을 포기하고 한방 치료를 택했다. 수술을 하더라도 완치가 불가능할 뿐더러 수명 연장 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는 의사의 판단 때문이다. 한방 치료를 받는 1년여 기간동안, 놀랍게도 대장암은 더이상 자라지 않았다.
#심영자(가명, 여·76) 씨는 위 림프종 환자다. 고령에 기저질환 등으로 수술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한방 치료를 택했다. 림프종이 악화될 것이라는 병원의 우려와는 다르게, 한방 치료 1년여만에 위 림프종으로 두껍게 된 위벽은 50%가량 줄었다. 몸 컨디션이 좋아진 그는 완치를 목표로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적인 암치료 센터들이 동양의 전통의학에 주목하고 있다. 침구학 같은 동양의학으로 암 같은 중대한 질병이 치료되는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어서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전통의학인 한의학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정부가 특정단체의 눈치를 보면서 해외 진출 통로를 막아놨고, 한의학을 과학화해 경쟁력을 키우겠다며 내놓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가 문제는 3년째 손도 대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는 사이 한의학의 상징으로 평가되는 경희대 한방병원은 개원 이후 처음으로 병상수를 줄이는 등 한의학이 위기에 내몰렸다.
<자료=대한한의사협회> |
◆ 세계 유명 암센터도 인정한 '한의학'
21일 대한한의사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존스홉킨스병원과 엠디 앤더슨 암센터, 하버드의과대학 부속병원인 다나 파버 암연구소,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주요 암센터들이 한·양방 협진을 실시하고 있다. 중대한 질병인 암 치료에서 협진이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보고가 잇따라서다.
최근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 자매지인 사이언티픽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는 '진행 간세포암 환자 288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한약 투여와 간암 환자의 생존기간 사이에 유의한 상관성이 있다'는 실험논문이 실렸다. 앞서 2014년에는 또 다른 논문에서 '비소세포폐암환자에 대해 한·양방 치료 병행 시 환자생존율이 증가하고 항암 치료에 따른 피부 및 소화기계 부작용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세계 최고의 대학병원으로 꼽히는 존스홉킨스는 홈페이지에 "침 치료가 통증과 자가면역질환 인지장애, 피부질환, 피로, 소화기질환, 부인과질환, 신경학적 질화, 호흡기질환 등에 효과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 의사들과 협진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병원은 수년간 지속된 협진을 통해 "침 치료는 오심과 구역, 안명홍조 피로, 통증 림프부종 등에 효과적이다"라고 홈페이지를 통해 명시했다. 엠디 앤더슨 암센터도 이 같은 내용을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고 있다.
전통의학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중국은 이미 중의학과 양방의 협진 체계를 구축한 상태다. 최신 의료기기를 제약없이 사용하면서, 환자의 치료과정과 예후를 정리하는 등 과학적 검증 작업을 통해 협진이 더욱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특히 감염병 같은 국가 중대 보건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중의학과 양방이 서로 힘을 합쳐 치료하거나 백신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은 한약을 양약처럼 제제화한 중성약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중국은 지난해 중의학으로 노벨생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자료=보건복지부> |
◆ '한의학' 찬밥‥중의사 "한의학 외면, 치료 목적에 환자 없기 때문"
중의학과 다르게 한의학은 국내에서조차 외면받고 있다. 최근 보건의료정책에서 제약산업과 병·의원 수출, 외국인환자 유치 등 글로벌 사업들이 대거 마련됐지만, 한의학 분야는 빠져있다. 정부가 외면하다보니 지난해 외국인환자 현황에서도 한방병원과 한의원의 감소폭이 가장 컸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불필요한 규제를 해소하겠다고 내놓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문제도 의사협회의 반대에 막혀 추진되지 않고 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중재를 위한 공청회를 단 한번도 개최하지 않는 등 사실상 손을 뗀 모양새다. 정부가 한편으로는 한의학의 과학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셈이다.
한의학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진출 통로도 막혀있다. 중의사들은 미국의사시험(USMLE)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중의학이 의학과 공통된 과목이 많기 때문에, 동등하게 시험을 볼수 있도록 해달라고 미국 시험주관사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복지부는 의사협회의 압력에 못이겨 한의사의 미국 의사시험 응시를 막아놨다. 2007년 한의대생들은 미국 의사시험에 응시했다. 시험주관사는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에 한의사의 시험 자격을 문의했고, 의사협회만 반대입장을 취했다. 의사협회가 반대하고 나오자 복지부는 정확한 입장표명을 꺼렸고, 결국 지금까지 한의사들은 미국 의사시험에 응시를 못하고 있다.
지금도 한의사들이 미국에서 의사시험을 볼수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복지부는 귀를 막은지 오래다. 의료 일원화를 통해 해결해야 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한의학은 정부의 주요 정책에서 외면받으면서 국내외에서 살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한의학을 차별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99%이상 정책이 확정되기 전까지 발표를 하지 못할뿐 '한의사 의료기기 허용' 등 대책을 만들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중국 서원병원의 자오란차이 주임 교수는 "중국에서는 중의학을 통해 양방에서 고치기 힘든 질병들을 치료해내자 환자의 질병 치료를 위해 협력하자는 의견이 모였다"면서 "진료행위가 다르다고 치료 효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의료 목적에 환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