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 베스트셀러, 위로·치유에 관한 서적 싹쓸이
혼란한 정국·힘든 경제 맞물려 위로의 책들이 인기
[뉴스핌=이성웅 기자] 자기계발서가 서점가를 달구던 시기가 있었다. '있어 보이는 책'들이다. 너도 나도 읽는 통에 한권쯤 읽어야 지식인이라고 할법했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최근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책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가 전체 국민이 아닌 일부를 위해 돌아가고, 국내외 정세 불안이 거듭되는 시기에 사람들은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한 마디를 듣고 싶어한다.
케티이미지뱅크 |
교보문고, 영풍문고, YES24 등 국내 대형서점의 최근 주간 베스트셀러 1위 책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이 책은 지난해 8월 출간됐지만,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불과 3주 전이다. 음원 차트에서나 찾아볼 법한 '차트 역주행'을 한 셈이다.
이 책이 뒤늦게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이유는 최근 대중을 사로잡은 '치유서'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책의 저자는 언어에도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저자는 단어의 어원과 유래 등을 통해 독자들을 위로하는 형식으로 글을 진행한다.
책 서두에는 "말과 글은 가슴에도 새겨진다. 마음 깊숙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이다. 우린 그 꽃을 보며 위안은 얻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대형서점들의 비소설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너의 안부를 묻는 밤(지민석·유귀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혜민)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백영옥) ▲나에게 고맙다(전승환) 등의 책들이 올라와 있다.
독자에게 위로를 건네고, 심각한 지식이나 이상보다 감정에 호소하겠다는 취지로 쓰여진 책들이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는 중이라는 이정현(32·서울 양천구)씨는 "최근에 '자괴감'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일을 하고 뉴스를 보면서 자괴감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영풍문고에 마련된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코너. 위로에 관한 책들이 책장을 채우고 있다. 이성웅 기자 |
이씨의 말처럼 이 같은 위로서들이 인기를 끄는 배경에는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각종 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이 있다.
지난해 10월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를 느낀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시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민주주의의 함의를 되살렸다는 자부심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가 결코 국민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에 빠졌다는 시민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경제 상황 역시 좋지 않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국내외 정세 속에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은 12.3%에 달했다. 실업자 수는 135만명으로 역대 최대였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은 정치적 상황도 불안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희망이 없고, 앞으로 사회가 더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의 전반의 불안함이 개인의 불안함을 키우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이성웅 기자 (lee.seongwo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