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흡연자 압도적 찬성, 흡연자 조건부 찬성과 반대 팽팽
‘전국 최초 금연 거리’ 강남대로, 10m 안 골목에선 흡연
실효성 의문…서울시 “검토된 바 없다” vs “검토중” 대립
[뉴스핌=심하늬 기자] 이인식(32)씨는 요즘 담배 피울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민이다. 금연구역인지 모르고 길거리에서 흡연하다 5만원의 과태료를 낸 뒤로, 늘 주위를 확인하고 담배를 피우려 한다.
그러나 금연구역 표시가 없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보행 중 흡연을 금지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이씨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길거리 흡연이 전면 금지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서울 용산역 부근에서 흡연자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오채윤 기자 |
‘보행 중 흡연금지’ 정책이 지난 7월 '2017 함께서울 정책박람회'에서 화제가 됐다. 시민·공무원·전문가로부터 88.23%의 압도적 찬성을 받았다.
이후 흡연자들과 비흡연자들은 해당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정작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서울시는 "검토 중"과 "검토하지 않는다"로 의견이 엇갈린다. 정책에 대한 논의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 흡연자 “흡연구역 확충된다면 찬성”
시민들은 보행 중 흡연금지 정책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비흡연자들은 대체적으로 찬성 입장을 내놨다.
직장인 정모(여·30)씨는 "담배 연기가 몸에 더 안좋다고 하던데, 보행 중 흡연을 금지하면 그렇게 연기를 마실 일이 없으니 괜찮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일부 흡연자들조차 길거리 흡연 금지정책에 찬성했다. 다만, 개방형 흡연부스 등 적절한 흡연구역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6일 지하철 사당역 개방형 흡연부스에서 만난 강태욱(남·27)씨는 “흡연구역이 충분히 확충된다면 길거리 흡연금지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 사당역 2번 출구에 설치된 '개방형 흡연부스'. 많은 흡연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심하늬 기자 |
김삼열(48)씨는 “흡연자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담배 냄새는 싫다. 때문에 쾌적한 흡연구역이 확충된다면 (보행 중 금연)정책에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흡연자 박기완(27)씨는 “흡연자가 알아서 자제하도록 캠페인을 펼치는 게 최선이지 보행 중 흡연을 강제로 규제한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규제한다면) 어디서부터 길거리인지, 집안에서 창밖으로 뿜는 담배 연기도 규제할 것인지 혼란이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서울 강남역 안쪽 골목. 대로에서 10여m 안으로 들어가도 흡연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심하늬 기자 |
◆ 오락가락 서울시
2012년 금연거리로 지정된 강남대로를 보면 보행 중 흡연 금지 정책의 효과를 미리 가늠할 수 있다. 거리 금연구역 5km 구간 안에서 담배를 필 경우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된다. 16일 이 지역을 찾았을 때 흡연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대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10m만 들어가자 흡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초구청은 사유지가 많은 이면 도로는 금연 구역 지정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답을 내놨다.
서울시가 추진하려하는 '보행 중 흡연 금지' 정책 역시 사유지에서 금연을 강제할 근거가 없다.
서울시는 해당 정책을 어떻게 검토하고 있을까. 서울시 건강정책팀에 문의한 결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은순 서울시 건강정책팀 팀장은 “서울시가 ‘보행 중 흡연 금지’ 정책을 검토 중이라는 기사는 모두 오보”라며 “현재 대로 등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문제는 각 구청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7월 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7 함께 서울 정책박람회'에서 5대 혁신 정책과 2대 역점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마채숙 서울시 사회혁신담당관의 말은 달랐다. 마 담당관은 지난 7월 ‘2017함께서울 정책박람회’에서 해당 정책이 높은 지지를 받자 “100일 후쯤 시의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언급했다.
정책 진행 상황에 대해 그는 “정책박람회 결과를 해당 부서(건강정책팀)에 전달했고, 부서 내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건강정책팀에서 해당 정책을 검토중이지 않다고 했다는 것을 전하자 마 담당관은 “시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해 전달한 정책을 해당 팀이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당황스럽다”며 “사실 확인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뉴스핌 Newspim] 심하늬 기자 (merongy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