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황수정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믿기지 않아요. 괴랄한 작품이라... 관객이 어떻게 볼지 잘 예측이 안 되네요."
첫 공연이 끝나고 다음날 마주한 이대웅 연출가는 피곤해 보이지만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약 2년 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랐기에 감회가 남다를 터. 조심스러운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작품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은 묻어났다.
우란문화재단(이사장 최기원)과 프로젝트 만물상(연출 이대웅, 음악 옴브레, 조연출 한아름)이 2년간 의기투합해 개발한 환상음악극 '멘탈 트래블러'는 소설가 존 가드너의 소설 '그렌델'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 '그렌델'은 영웅 '베오울프'에게 죽음을 당하는 괴물로, 소설에서는 그렌델이 왜 괴물이 되었고, 사람들을 죽이는지 내면에 대해 다룬다면, '멘탈 트래블러'는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제3의 시선에서 이들을 바라보고 또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렌델을 모티브로 시작해 '21세기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다시 그렌델을 봤어요. 존 가드너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느꼈던 지점들을 지금의 시점으로 가져오면 어떨까 싶었죠. 그가 바라보는 시선이 특이했거든요. 21세기 들어서 괴물이 아이콘화 되고 있어요. 인간답지 않은 세상이다보니 다른 존재를 데려와 인간을 빗대고 있는 거죠. 책을 읽다보니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작품은 영화 예고편을 만드는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본편보다 재미없는 예고편 '그렌델'을 만든 박PD가 예고편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자살한다. 유서에 이름이 언급된 구인턴이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 담긴다. 이를 통해 평범한 사무실 구성원들의 심리적 변화와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지 살펴보고, 인간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허무함, 무력함, 고립된 자아의 울부짖음 등이 그려진다.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요. 거기서 존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삶의 가치는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특히 '이름'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타인에게 불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불려야만 내가 존재하는 거죠. 출근길 지하철이나 만원 버스를 타면 타인과 엄청 가까이 접촉해 있지만, 이름도 모르고 정보도 없고 꼭 마네킹 같아요. 차갑죠. 현대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삶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고 사는데, 생각보다 불행한 것 같아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극중 '괴물은 오해로 만들어진다'는 대사가 있다. 이는 존 가드너의 소설에도 나오는 문구. 이대웅 연출은 이를 통해 21세기 현대의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관객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사실 괴물은 자기혐오를 하는 존재에요. 21세기에서 괴물은 즉, 자기혐오는 타인의 시선, 편견 때문에 생기는 것 같았어요. 오해와 편견을 통해 만들어지는 괴물은 사실 아름다움으로 종결시킬 수 있어요. 아름다움이란 용기, 지혜, 사랑 등 매우 포괄적인 단어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자기희생'을 들 수 있죠.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극중 인물의 자기희생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죠. 극을 본 관객만 알아요."
이대웅 연출은 기존의 소설이나 작품에서 벗어나 그 이면, 인물의 뒷이야기를 상상하고 만들어낸다. 그는 "보이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라이브 음악을 함께 하며 무대에 생동감을 더하는 것도 특징이다.
"야사나 비화, 이런 걸 좋아해요. 대본이 있고 정해진 대로 공연을 하는 논법에서 벗어나 여기에 의심을 품는 거죠. 그랬을 때 제 색깔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원형을 추적해서 사람들이 몰랐던 점을 찾아내는게 재밌어요.(웃음) 음악은 무대를 더 풍성하게 채워줘요. 스피커보다는 라이브가 확실히 느끼는 바가 크죠. 함께 하는 뮤지션들도 연주만 목적이 아니라 예술 퍼포먼스를 완성하는데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 공연 안에서 큰 역할을 하시죠."
극단 여행자의 연출인 그는,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옴브레, 신예 연출 한아름과 프로젝트 그룹 '프로젝트 만물상'으로 활동 중이다. '만물의 상을 맺히게 하다'는 뜻으로, 공연 문법의 경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연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한다. 주제 선정부터 자료조사, 준비, 공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하는 '디바이징 시어터' 방식을 추구한다.
"제로(0)에서 함께 시작하는 거죠. 작가, 배우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구성을 짜고, 노래를 만들면 그걸 기반으로 장면을 구성하고, 점차 과정을 밟아가면서 저희 색깔의 문법이 나와요. 이런 과정 자체가 연극같다고 느끼기도 하죠. 저는 아직 아날로그 감성이 좋은 사람이에요. 연극은 아직까지 가장 아날로그 감수성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시대에 역행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것, 그걸 찾아내서 관객들에게 어떤 상을 맺게 만드는게 '프로젝트 만물상'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환상음악극 '멘탈 트래블러'는 오는 18일까지 서울 용산구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공연된다.
[뉴스핌 Newspim] 글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