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동명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2006년 개봉한 동명영화 원작, 남북 이야기를 전하는 '국경의 남쪽'
박신양·전도연 주연의 영화 '약속' 20주년 기념,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요즘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과거의 향수를 추억하는 것을 넘어 옛것 그 자체를 무대 위로 올리고 있다. 적게는 12년, 많게는 20년이 넘은 예전 영화들이 연극, 뮤지컬로 변모해 대중과 만나고 있다. 왜 십수 년 전 작품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 과거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뮤지컬
지난달 12일 개막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연출 김민정)는 2001년 개봉한 이병헌, 故 이은주 주연의 동명 영화가 원작이다. 17년 전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던 '태희'와 안타까운 이별을 한 후, 그녀를 잊지 못하고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는 남자 '인우'가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 '현빈'에게 태희를 느끼며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2012년 초연, 2013년 재연 후 5년여의 기획, 창작 기간을 거쳐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중이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국경의 남쪽'(연출 반능기)은 분단과 탈북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지난 2006년 제작된 차승원 주연, 안판석 감독의 동명영화가 원작으로, 2016년 초연된 바 있다. 정치적 이념보다 순수한 사랑에 초점을 맞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정통 멜로 형식으로 풀어냈다. 오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에 캐스팅된 배우 김주헌(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김찬호, 박정복, 전성민, 이진희, 신다은 [사진=마크923] |
마지막으로 오는 12일 개막을 앞둔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연출 김지호)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그린 2인극으로, 이별을 앞두고 있는 두 남녀의 감정들을 노래처럼 표현한다. 1996년 연극으로 먼저 선보여 이듬해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남녀주연상을 수상했던 작품이다. 1998년 박신양, 전도연 주연의 영화 '약속'으로, 2006년 이서진, 김정은 주연의 드라마 '연인'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오는 12일부터 9월21일까지 대학로 콘텐츠그라운드에서 개막한다.
◆ 아날로그 감성부터 달라진 시대 상황까지, 무대에 오를 수밖에
뮤지컬로 재탄생된 '번지점프를 하다'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더욱 강조한다. 여주인공 '태희' 역을 맡은 배우 임강희는 "요즘 사랑은 참 빠르다. 진득한 사랑이 없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살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그립지 않나 싶다. 이런 사랑 자체가 많이 없어서 오히려 가슴에 와닿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아름다운 넘버는 극의 서정성을 더욱 강조해 많은 관객들에게 호평받고 있다.
창작가무극 '국경의 남쪽' [사진=서울예술단] |
'국경의 남쪽'은 달라진 시대 상황과 맞물려 더욱 눈길을 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국경을 넘고 회담을 하는 등 남북 관계가 한층 진전됐다. 반능기 연출은 "이야기 자체가 관객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극중 '경주' 역을 맡은 배우 하선진은 "아버지께서 이북에서 오셔서 실제로 이산 가족분들이 계시지만 그럼에도 분단이 뭔지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TV에서 남북 두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보며 뭔지 모를 울컥함을 느낀 국민들이라면, 분명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돌아서서 떠나라'는 조직폭력배 두목과 인텔리 의사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그린 2인극이다. 김지호 연출은 "사랑 이야기에는 시대가 없다고 생각한다. 100년 전 나태한 유럽 귀족들의 불륜 이야기도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훌륭한 고전이라고 무대에 오르는데 한국의 사랑 이야기는 왜 없을까란 의문에서 시작했다"며 "요즘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치가 많이 빛바랬다. 사랑을 빙자한 비윤리적 행위에 너무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극중 여주인공은 사랑에 헌신적이지만 그럼에도 그 헌신이 맹목과 같이 않음을 표현한다"고 강조했다.
◆ 새로운 각색, 연출로 오늘날 관객들까지 잡는다
아무리 작품성, 흥행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시대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현재의 관객들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창작가무극 '국경의 남쪽',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 모두 작품의 각색은 기본, 새로운 넘버 추가 등의 시도로 관객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사진=세종문화회관] |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민정 연출은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결국 시대적 변화, 감수성의 변화였다. 그래서 대본 수정이 불가피했다. 지금 보니 혐오 요소들이 많았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희롱의 부분도 많았다. 대본 작업을 하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다 보고 불편한 부분을 최소화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 개봉 당시 '동성애' '동반자살' 등 파격적인 소재로 주목받았던 것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양성, 이성, 동성의 구분 없이 '영원한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 또한 주인공의 '조직폭력배'라는 직업, 사랑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극중 직업은 필연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부분으로, 김지호 연출은 "절대 범죄를 미화하지 않았다"며 "비도덕적 삶을 살았던 공상두'라는 인물이 도덕적 삶을 사는 '채희주'를 만나 변화하고 도덕적 삶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담는다"고 밝혔다. 이어 "작품을 수정하기 보다 작품 대사에 담긴 철학적 요소를 함께 사유하고 연기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애썼다"고 덧붙였다.
창작가무극 '국경의 남쪽'의 정영 작가는 "초연 때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아픔이나 슬픔을 이야기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희망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올해 남북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을 통해 마음 속의 경계선이 흐릿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희망이 더해졌다"고 설명했다. 서울예술단 공연기획 김덕기 팀장은 "서울예술단 창단부터 남북교류가 미션이었다. 최근 남북화해무드가 급진전되면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