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최태원式 공유경제 구상 '홈픽'으로 현실화
이용자가 픽업 시간‧장소 선택, 모바일 결제로 편의↑
일자리 500개 이상 창출...경영난 겪던 주유소에 '효자'
[서울=뉴스핌] 유수진 기자 = "홈픽(Home Pick)입니다. 택배 수거하러 왔습니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앞. 주황색과 남색이 섞인 유니폼을 입은 홈픽 피커(Picker)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택배상자를 받아들자마자 곧장 집화장소인 인근 주유소로 향했다. 피커가 떠난 뒤 휴대폰에는 물품이 정상적으로 인수됐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일 년 중 택배 물량이 가장 많은 명절 직전, 그것도 연휴 전 마지막 접수일이었지만 홈픽이 야심차게 내건 '1시간 내 픽업' 방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상 무(無)'였다. 이날 택배를 신청하고 물건을 건네주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60분. 피커는 담당 주유소를 기점으로 반경 3㎞ 지역에서만 수거를 담당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고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
김영민 줌마 대표(오른쪽)과 직원. [사진=SK이노베이션] |
정유업계 라이벌인 SK에너지와 GS칼텍스가 최근 한마음 한뜻으로 신개념 택배서비스에 힘을 쏟고 있다. 스타트업 줌마, 택배업체 CJ대한통운과 함께 런칭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에 들어간 '홈픽'이 바로 그것이다.
홈픽은 휴대폰으로 택배를 접수하면 1시간 내 피커가 찾아와 물건을 수거, 인근 주유소에 중간 집화했다가 배송하는 개인간 거래(C2C) 택배서비스다. 시간과 장소 제약을 줄여 이용자의 편의를 향상시켰다는 점이 특징이다.
양사는 홈픽을 위해 핵심자산인 전국 주유소를 집화거점으로 내놓은데 이어 광고제작 등 홍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 덕에 홈픽은 전국서비스에 돌입한 첫 달 일평균 주문량이 3000건을 넘어서는 등 순항하고 있다.
실제 홈픽을 이용해보니 휴대폰 하나로 접수부터 운임 결제, 배송 현황 조회까지 모두 간편히 해결할 수 있었다. 무거운 상자를 들고 우체국이나 편의점에 가는 대신 원하는 장소에서 피커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일단 카카오톡을 열어 '홈픽'을 친구로 등록한 뒤 '홈픽 부르기'를 누르자 곧바로 택배신청서가 나타났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이름, 주소, 연락처를 적은 뒤 물품명과 가격, 부피‧무게 등 택배 접수시 필요한 내용들을 차례로 채워 넣었다.
이용요금은 중량 20㎏ 이하, 가로‧세로‧높이의 합 160㎝ 이하인 택배에 한해 5500원(9월까지 3990원)으로 동일했다. 크기나 무게에 따라 운임을 다르게 책정하는 기존 업체들과 차별화를 둔 것이다. 결제는 신용카드나 SSG‧삼성페이로 가능해 완료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픽업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1시간 단위로 시간대 선택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오전 9시45분에 택배를 접수한다면 '오전 10시~11시'가 가장 빠른 시간대다. 특히 '1시간 이내 픽업' 운영방침에 따라 10시45분 전에 피커가 도착한다.
결제를 마치자 곧바로 접수 알림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후 피커가 확정됐다는 메시지가 왔고, 물품을 인도한 후에는 인수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다. 특히 피커 이름과 연락처가 함께 적혀있어 더욱 믿음이 갔다. 배송 현황을 조회해보니 피커가 수거해 간 물품이 주유소로 옮겨져 운송장을 달고 택배사에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CJ대한통운의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배송이 진행됐다.
홈픽 이용시 접수, 피커 확정, 물품 인수 시 메시지가 날아온다. [사진=유수진 기자] |
홈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유인프라를 제안,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지난해 말 SK에너지가 전국 주유소를 공유인프라로 제공, 지역 물류 거점화하기로 하면서 최 회장의 '기업 자산 공유인프라' 구상을 현실로 옮긴 것이다.
이후 SK에너지는 줌마, CJ대한통운과 '실시간 택배 집하 서비스' 구축을 위한 사업추진 협약을 맺었고,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하던 도중 경쟁사인 GS칼텍스로부터 동참하고 싶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4개사가 모여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현재 홈픽은 전국 SK에너지‧GS칼텍스 주유소 411개를 물류 집화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른 시일 내 450개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다. 홈픽 관계자는 "지금 네트워크로도 충분히 전국 커버가 가능하지만 45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면서 "계속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홈픽은 '피커'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 것은 물론, 경영난에 직면한 주유소에 새로운 수익원 확보의 길을 열어주는 등 경제적 가치도 창출하고 있다. 현재 543명이 피커로 활동 중이며, 향후 주유소 네트워크가 확대됨에 따라 이 숫자도 함께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주유소 한켠의 쓸모 없던 공간이 수익 창출원으로 탈바꿈하며 주유소 사장들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홈픽이 택배물품보관소 등을 설치한 공간에 대해 임대료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기준 매월 60만원~100만원 정도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요즘 주유소가 다들 어려운데 개별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긴 쉽지 않다"면서 "홈픽은 주유소 유휴공간을 활용해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상생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uss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