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
박은석·최우혁·송문선·강상준 등 출연
7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서 공연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마의 16세'란 16살의 나이를 기점으로 외모가 전과 달라지는 것을 뜻한다. 청소년기 급격한 성장과 신체적 변화는 당연하지만, 만약 삶 자체가 완벽하게 바뀌어 버렸다면 이 조차도 당사자에게는 '마(魔)의 16세'였지 않았을까.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 장면 [사진=서울예술단] |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故 박지리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계급이 나뉘어진 시대에서 최상위 계층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3대에 걸친 비극을 그렸다. 신과 인간, 죄와 벌, 부모와 자식,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흥미로운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이다.
1지구에서 9지구까지 나뉜 계급 사회에서 최상위 1지구 내에서도 명문기숙학교로 꼽히는 '프라임스쿨'에 다니는 '다윈 영'(최우혁)이 극의 주인공이다. 그는 문교부 장관이자 프라임스쿨의 운영위원장인 아버지 '니스 영'(박은석), 할아버지 '러너 영'(최정수)와 함께 화목한 가정에서 반듯하게 자란 우등생이다.
'다윈'은 아버지가 30년간 진행한 친구 '제이 헌터'(신상언)의 추도식에서 그의 조카 '루미 헌터'(송문선)를 만나고, 함께 제이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9지구 후디들이 일으켰던 12월 폭동에 대해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얽혀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건의 진상을 숨기기 위해 진정한 우정과 자유에 대해 알게 해준 친구 '레오 마샬'(강상준)을 죽이고 만다.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 장면 [사진=서울예술단] |
자신의 출생을 벗어나고자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던 '러너',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친구 '제이'를 죽여야 했던 '니스', 또다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친구 레오를 죽인 '다윈'까지 삼부자의 얽히고설킨 고리가 너무나 잔혹할 따름이다. 이 모든 사건은 각 세대가 16세 때 일어났다. 성장통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괴롭고,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을 지닌 이들은 완전히 달라진 삶의 태도로 일종의 '어른'이 된다.
"나의 열여섯 살을 던진다 / 나의 소년시절을 던진다 /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한다 / 난 어른이 된다 /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된다" ('푸른 눈의 목격자' 중)
인간 내면에 선과 악이 공존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어느 쪽 손을 잡아야할 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순간에서 악을 택한 이들의 앞날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개인은 괴로울 지언정, 이로 인해 사회는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더 잘 굴러가기 때문이다.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어른이 된다는 결말은 서글프지만, 순수성을 잃고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 장면 [사진=서울예술단] |
원작은 850여 페이지의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이에 프라임스쿨이 남녀공학으로 바뀌고, 3대가 함께 살고, 할아버지의 출신을 드러내는 힌트가 점이 아니라 문신으로 바뀐다. 또 원작에서 아버지의 학교 동기였던 로이드 검사가 사회의 정의를 쫓는 외부 인물로, 오래된 물건 교환에서 아버지의 죄를 밝힐 증거인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하는 점 등 다양하게 각색됐다. 특히 '루미'의 역할이 축소되고 '레오'와의 우정이 강조되면서 비극을 더욱 부각시켰다.
배우 박은석과 최우혁은 '비주얼 부자'로, 등장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 급변하는 인물의 감정, 내면의 갈등과 고뇌 등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연기로 관객들을 설득시킨다. 웅장하면서도 다크한 넘버들은 작품의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순식간에 그 시대로 빠져들게 만든다. 다만, 짧은 연습 기간이 드러나는 앙상블들의 깔끔하지 못한 군무가 아쉬울 따름이다.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오는 7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