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레스크' 주제로 쇼팽·하이든·슈만·파데르프스키 음악 선곡
쇼팽 스페셜리스트이자 정경화 파트너·조성진 멘토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유머는 예술에서 매우 훌륭한 주제죠. 일상에서 유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에서 소중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거예요. 이번 공연이 청중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줬으면 합니다."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56)가 오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지난해 3월 첫 리사이틀에 이어 두 번째 독주회다. 지난 9일 서울 인사동 오라카이 스위츠 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 [사진=뮤직앤아트컴퍼니] |
케너의 두 번째 독주회 주제는 '유머레스크(Humoresques)'로 하이든, 쇼팽, 슈만, 파데레프스키의 음악 속 유머를 탐독한다. 때로는 기발함과 놀라움, 익살과 패러디 형태로, 때로는 위대함과 고통을 담은 웃음이란 더 복잡한 형태로 유머의 본질을 보여준다.
"독서를 좋아하고 음악 관련 연구를 좋아해요. 독일 철학가이자 소설가인 장 파울 프리드리히 리히터가 유머를 주제로 쓴 에세이를 읽고 감명받았죠. 유머란 인생에서 없으면 안될 중요한 감정이에요.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바꿀 수 있죠. 아스피린보다 더 중요해요(웃음). 작곡가마다 유머로 접근하는 방식이 다 다른데 거기서 얻은 여러 아이디어와 감동을 전하고 싶었어요."
이번 독주회는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다장조', 슈만의 '다비드동맹 무곡집', 쇼팽의 '5개의 마주르카', 파데레프스키의 '6개의 유머레스크'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하이든은 음악에 나타난 수사적 장치를 많이 공부했죠. 보통 피아니스트는 무대에서 바디랭귀지를 잘 안하는데 하이든은 몸 전체를 움직이지 않거나 아예 방향을 바꾸는 등 음악 외 표현력도 중시했어요. 마주르카는 악보를 그대로 따라 할 수 없는 작품이에요. 많이 듣고 보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죠. 실제로 폴란드에서 마주르카 댄서들을 봤고 전통 연주자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악보대로만 한다면 공허한 연주가 될 거예요. 음악의 균형, 순서에 집중하는 소나타와 달리 여러 장치를 어떻게 조합할지 생각했어요. 가장 많은 영감을 얻을 때는 운이 좋은 실수가 나올 때죠(웃음)."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 [사진=뮤직앤아트컴퍼니] |
케너의 또 다른 수식어는 '쇼팽 스페셜리스트'다. 1990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와 폴로네즈상을 받았다. 이어 같은 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쇼팽과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동시 입상한 유일한 미국인 피아니스트다.
"어린 시절 저를 매료시킨 작곡가가 쇼팽이라서 행운이죠(웃음). 쇼팽의 작품은 연주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풍부한 접근 가능성을 주죠. 무엇보다 쇼팽은 저를 한 인간으로 만들어줬어요. 제게 말을 걸었고, 제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죠. 쇼팽의 음악은 순수하고 신선하며 아무것도 섞이지 않았어요. 쇼팽의 핵심은 바로 표현의 자유예요. 그저 음악을 즐기고 감상하며 제게 음악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도록 해야 하죠."
그는 유럽에서 활동하며 11년간 영국 왕립음악원의 교수를 역임했다. 2015년부터는 마이애미 대학 프로스트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쇼팽 콩쿠르와 부조니 콩쿠르 등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며, 쇼팽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각각의 균형을 잡으면서 동등하게 즐기고 있어요. 심사위원으로서는 객관적 기준이나 테크닉보다는 연주자가 음악을 정말 느끼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봐요. 판단보다 듣는 걸 더 중요시하죠. 교육자로서는 교수의 말에 단순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조언을 받아들여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지 보죠. 피아니스트로서는 음악을 듣는 청중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해요. 제가 음악을 재현하고 컨트롤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음악은 제한적이게 되니까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 [사진=뮤직앤아트컴퍼니] |
케너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음악적 파트너이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멘토로도 유명하다. 2011년 대관령국제음악제(현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참여한 게 인연이 됐다. 특히 정경화와는 8년째 듀오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정경화는 케너를 "내 영혼의 동반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경화는 음악을 벗어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줬어요. 모든 것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죠. 함께 작업하고 공연할 때 우리 듀오를 이끄는 영혼의 결합을 느껴요. 서로의 어떤 부분을 충족시키죠. 조성진은 처음 만났을 때 정말 감명받았어요. 최근에는 자신의 목소리도 내고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도 성장했더라고요. 작게나마 그의 인생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감사하고 뿌듯합니다(웃음)."
그는 이번 독주회 후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연주만큼 후학 양성 또한 큰 성취감과 영감을 주기에 케너의 기대도 남다르다.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만나는 걸 기대하고 있어요. 음악을 연주하고 만드는 것만큼이나 후배들을 양성하는 건 보람차고 기쁜 일이죠. 젊은 후배들의 실력이 굉장해요. 클래식 업계를 이끌어갈 이들의 미래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