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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내시가 만든 '광화문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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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 김사행이 설계·감독·감리..정도전은 큰 그림만
임진왜란·일제강점기 거치며 수차례 헐고 짓는 아픔
무분별한 광복절 집회로 코로나19 재확산 위기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광화문'이 울고 있다. 안정세로 가닥을 잡았던 듯 싶었던 신종코로나감염증(코로나19)이 광복절(8월15일) '광화문 집회'를 계기로 재확산 기로에 섰다.  

◆정문(正門)에서 세종 때 광화문(光化門)으로

조선건국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철저히 불탔다. 270여년의 세월을 상처입은 채 폐허로 지낸 광화문은 대원군의 중건으로 다시 기세를 펴는 듯 했지만, 일제 치하에 신음했다. 6·25전쟁을 겪으며 다시 파괴됐고, 몇 번의 재건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광화문은 현 시대에서 경복궁의 남문(南門)이 아닌 민주화의 요람으로 각인된다. 광화문 앞 넓게 트인 광장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한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사상 최초로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촛불집회를 비롯해 민주화의 고비마다 광화문은 자리를 내줬다.

광화문은 조선 건국 이후 법궁(法宮·왕조의 대표궁궐)이 된 경복궁의 담을 둘러싼 남쪽문이다. 처음부터 광화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태조 4년(1395년) 10월7일 2번째 기사다. 태조가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새 궁궐 전각의 이름을 짓게 했다.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분부하여 새 궁궐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하니, 정도전이 이름을 짓고 아울러 이름 지은 의의를 써서 올렸다.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하고, 연침(왕의 침소)을 강녕전이라 하고, 동쪽에 있는 소침(작은 침실)을 연생전이라 하고, 서쪽에 있는 소침을 경성전이라 하고, 연침의 남쪽을 사정전이라 하고, 또 그 남쪽을 근정전이라 하고, 동루를 융문루라 하고, 서루를 융무루라 하고, 전문을 근정문이라 하며, 남쪽에 있는 문을 '정문'(正門)이라 하였다.'

광화문의 첫 이름은 바를 정(正)자를 쓴 '정문'이었다. 정도전은 이름을 지은 까닭도 태조 앞에서 밝힌다.

'정문(正門)에 대해서 말하오면, 천자와 제후가 그 권세는 비록 다르다 하나, 그 남쪽을 향해 앉아서 정치하는 것은 모두 정(正)을 근본으로 함이니, 대체로 그 이치는 한가지입니다. 고전을 상고한다면 천자의 문을 단문(端門)이라 하니, 단(端)이란 바르다(正)는 것입니다. 이제 오문(午門·남쪽문)을 정문(正門)이라 함은 명령과 정교(政敎)가 다 이 문으로부터 나가게 되니, 살펴보고 신실하게 한 뒤에 나가게 되면, 참소하는 말이 돌지 못하고, 속여서 꾸미는 말이 의탁할 곳이 없을 것이며, 임금께 아뢰는 것과 명령을 받드는 것이 반드시 이 문으로 들어와 윤하하신 뒤에 들이시면, 사특한 일이 나올 수 없고 공로를 상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을 닫아서 이상한 말과 기이하고 사특한 백성을 끊게 하시고, 열어서 사방의 어진 이를 오도록 하는 것이 정(正)의 큰 것입니다.'

정문이 광화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세종 때다. 세종 8년(1426년) 10월 26일.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 있었지만, 세종은 집현전에 명해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다시 정했다.

'집현전 수찬에게 명하여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게 하니, 근정전 앞 둘째 문을 홍례(弘禮), 세 번째 문을 '광화'(光化)라 하고, 근정전 동랑 협문을 일화(日華) 서쪽 문을 월화(月華)라 하고, 궁성 동쪽을 건춘(建春), 서쪽을 영추(迎秋)라 하고, 근정문 앞 석교(돌다리)를 영제(永濟)라 하였다.'

광화문은 양반들의 문이었다. 궁궐의 정문이라는 상징성이 있는데다, 좌우에는 조선의 관청들이 줄지어 있어 백성들이 감히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광화문은 조선의 표준시 역할도 했다. 광화문에 종과 북을 달아 임금의 거동을 알리고, 백성들에게도 일하고 마칠 시간을 알렸다.

'다락 3간이 상·하층으로 있었다. 다락 위에 종과 북을 달 새벽과 저녁을 알리게 하고 중엄을 경계했으며, 문 남쪽 좌우에는 의정부(議政府)·삼군부(三軍府)·육조(六曹)·사헌부(司憲府) 등 각사 공청이 벌여 있었다.'(태조 4년(1395년) 9월29일 경신 6번째 기사)

세종이 정문(正門)을 광화문으로 개명한 이유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 남아 있지는 않다. 몇가지 설이 대두된다. 태평성대를 뜻하는 광청화일(光天化日)을 줄인 말이라는 설과 중국 고전 '서경'에 나오는 광피사표(光被四表)에서 따온 설이 유력하다.

박대종의 어원 이야기(데일리한국·2012년 2월23일)에 따르면 광피는 본래 빛이 넓게 미친다는 뜻이다. 임금의 덕이 널리 미치게 된다는 뜻도 가진다. 광(光)은 빛이라는 뜻 외에 '덕'(德)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즉, '광화=덕화'다. 중국 남북조시대 위수가 편찬한 '위서'(魏書·551~559) 함양왕희전에 덕화의 의미로 쓰인 '광화'가 나온다. 왕희는 왕에게 "폐하의 성스러움은 요순보다 더 뛰어나 중원을 광화하셨습니다(성과요순 광화중원·聖過堯舜 光化中原)"라고 대답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6년경 촬영된 광화문의 모습. <자료=문화재청> 2020.08.20 fair77@newspim.com

남쪽을 바라보는 광화문은 임금의 덕을 만방에 떨치는 덕화문이라는 해석이다. 남쪽은 정면이라는 의미와 같다. 경복궁에서 조선임금들은 '앞=남쪽'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 정사를 펼쳤다. 남쪽 정문은 백성들을 향해 정사를 펼치는 문이었다. 따라서 광화문은 왕이 덕행으로 백성들을 감화시키는 남쪽 정문이란 뜻을 담아 집현전 학사들이 이름을 지어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광화문은 임금이 백성들에게 직접 알리는 소통의 역할도 맡았다. '조선임금의 대자보'라는 말이다. 세종 11년(1429년) 2월 5일, 사헌부에서 건의한 금령의 조문을 요약해 광화문 밖 등지에 내걸었다. 조문은 모두 43개다. 주요 내용으로는 ▲관청의 조회가 끝날 때 옷을 터는 일 ▲남녀 불문하고 황색 옷을 입는 일 ▲양반 아닌 상인(常人)들이 성내에서 말을 타는 것을 금지했다. 중이 과부집에 출입하는 것도 금지했는데, 당시 승려들이 과부집에 자주 드나들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음을 알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광화문 담벼락은 임금의 대자보가 아닌 '백성의 대자보'를 붙이는 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중종 6년(1511년) 4월 17일 어떤 사람이 방문을 광화문 담장에 붙였다.

'김근사·성운·김굉·이빈은 오늘날의 사흉(네명의 흉악한 인물)이다. 근사는 폐주의 행신으로 폐주가 총애하던 기생을 첩으로 삼았으니, 신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운은 눈을 내려 뜨지 않고 조정을 경멸하며, 부정한 재물로 큰 집을 지었다. 김굉은 본래 그 집안에 음란한 기풍이 크게 행했으니, 두 기생을 첩으로 삼고 방종 음란을 마음대로 한다. 이빈은 상 중에 내를 막아 논을 풀었으니, 이것은 온 나라의 중론이다." 하였다.'

다시 말하면 김근사 등 4명은 중종반정 이후 옛 임금인 연산군의 신하들인데, 새로운 권력에 잘 타고 올라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잘사니 나라 사람들이 비난한다는 내용을 대자보로 붙인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의 야경 모습. <자료=문화재청>2020.08.20 fair77@newspim.com

◆내시가 설계하고 지은 광화문

정도전이 광화문을 비롯한 경복궁 궁궐 배치 등 큰 그림을 그렸다면 실제 광화문을 설계한 인물은 김사행이다. 벼슬이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다. 내시부의 으뜸 벼슬, 종2품이다. 즉, '환관 대장'이다.

환관이지만 건축에 일가견이 있었다. 고려말 공민왕때부터 조선 태조까지 목숨을 이어가며 권세를 누리다 태종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 당시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내걸린다.

고려사 세가 권제43(공민왕 21년-1372년-10월)에서는 김사행이 건축에 자질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양릉을 참배하고 길에서 놀이판을 벌이고 (공민왕이) 궁궐로 돌아왔다. 환관 김사행이 공사 감독을 잘하였으므로 안마(안장을 앉은 말)를 하사했다.'

비록 환관 신분이지만 건축에 보통 재능이 있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태종의 입에서 '실제 경복궁 공사 설계와 감독은 김사행이 도맡았다'는 말이 나온다.

태종12년(1412년) 5월 14일. 형조에서 박자청이라는 신하가 이중위라는 인물에 대해 폭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이 대목에 김사행의 이름이 언급된다.

태종이 말한다. "태조 때에 있어 무릇 공역(工役)의 일을 환자(宦者·내시) 김사행이 맡았는데,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김사행이 태조를 권하여 공역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사행이 권한 것이 아니고 도성을 창건하는 초기를 당하여 무릇 공역하는 것이 모두 신충(宸衷·임금의 마음, 즉 태조의 뜻)에서 나왔었다."

눈여겨 볼 대목은 김사행이 공역의 일, 즉 경복궁 창건의 일을 맡아 지휘 감독했다는 점을 태종이 직접 말한 것이다.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과 광화문도 김사행의 설계와 감리, 감독에 따라 이뤄졌다.

환관이지만 조선창업을 도와 태조에 의해 공신의 지위도 받는다. 태조 2년(1393년) 7월 27일 경오 1번째 기사다. 태조가 창업에 공이 있는 우인열·김사행·윤상·권중화 등에게 포상토록 교지를 내렸다.

'판내시부사 김사행은 내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궐내의 제도가 대강 마련되고 갖추어지지 못했는데, 전조(고려) 성시의 궁중 의식을 일일이 들어 지나친 것은 줄이고 모자란 것은 보태어서 내조의 다스림을 장식했으니, 공을 기록할 만하다.'

현재 몇차례 재건축과 보수가 되기는 했지만, 광화문의 웅장한 모습의 기초는 '조선의 내시'가 세운 셈이다. 하지만 김사행은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 건축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1차 왕자의 난 때 태종은 김사행의 목을 베어 삼군부(조선초 군무를 관장하던 관청) 문에 매달게 했다.

고려와 조선을 넘나들며 광화문을 세운 환관은 역적으로 몰려 생을 마감했다. 김사행의 목이 매달린 삼군부는 조선초 육조거리 오른편 맨 앞(현재 정부서울청사 건물)에 위치했다. 자신이 세운 웅장한 광화문을 목이 잘린 채 바라본 애절한 인생이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제75주년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 국민운동본부·자유연대 주최로 문재인 퇴진 8.15 국민대회가 열린 가운데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2020.08.15 mironj19@newspim.com

◆광화문의 눈물..집회자유에 걸맞는 책임 필요

임진왜란 때 불타 폐허로 남은 경복궁과 함께 광화문은 대원군의 중건까지 278년을 상처입은 채 쓸쓸히 자리를 지켰다.

일제 침탈기에는 조선총독부를 짓기 위해 건춘문 북쪽(현재 국립민속박물관자리)으로 해체 이전되면서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메이지 일왕 등을 기리는 일본의 신사)을 바라보기 위해 5도 가량 건물 각도까지 틀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6·25 전쟁 당시 포탄을 맞아 완파돼 목조 석루 부분은 사라졌고 석축만 남았다.

1968년 원래 위치로 이전한다고는 했지만 고증을 거치지 않은 채 콘크리트로 복원됐고, 당시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춰 3.75도 가량 틀어졌다.

결국 광화문은 경복궁 복원사업 일환으로 2006년 철거돼 4년만인 2010년 완공되기는 했지만, 문 앞에 있던 월대(궁궐의 정전, 묘단, 향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는 교통체증을 이유로 복원이 미뤄져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광화문이 '집회의 자유 메카'로 자리매김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동안 집회의 성지는 서울시청 앞 광장이었다. 대한민국에 민주화를 가져온 1987년 민주항쟁을 비롯해 한국사의 주요 고비에는 '시청앞 광장'이 있었다.

하지만 2016년 박근혜대통령 탄핵 집회 등을 계기로 광화문 광장은 집회의 메카로 자리 잡는다.

집회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리다. 대한민국 헌법도 제2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알릴 자유는 있다. 다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광복절에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집회는 법원도 허락한만큼 비난받을 권리는 없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는 점을 고려한 배려가 있어야 했다.

광화문 집회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있다. 그나마 기운을 차리는가 싶던 식당 등이 다시 침체기미가 뚜렷하고, 사회가 코로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광화문 집회에서 광화문은 죄가 없다. 책임을 저버린 사람들만 죄가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재유행을 보면서 광화문이 흘리는 눈물과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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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웨스팅하우스 지분투자 추진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설희 인턴기자= 정부가 미국 내 대형 원전 건설과 미국 원전 원천기술 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를 대미 전략투자 후속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국내 원전 상장사의 실제 사업 참여 범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율과 신규 원전 노형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시장에서는 지분 투자 자체보다 국내 업체가 설계와 설계·조달·시공(EPC), 주기기와 보조기기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사업권을 확보하는지가 향후 수주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 지분보다 사업권…韓 역할 명문화 관건 23일 산업통상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후속 대미 투자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은 미국 측과 5~10% 수준에서 협상 중이다. 미국 신규 원전 8기 가운데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와 한국이 개발한 APR1400 2기로 구성하는 방안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AI 일러스트=설희 기자] 증권가에서는 지분율 자체보다 향후 미국 원전 사업에서 국내 기업이 실제로 확보할 사업 범위를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특히 AP1000 사업에서는 과거 공급 이력과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존 협력관계가 신규 수주로 이어지는지가 상장사별 실적을 가를 요인으로 거론된다. 기업별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AP1000 핵심 주기기 공급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에이치아이도 원전 보조기기(BOP) 공급 이력을 갖고 있다. 현대건설은 웨스팅하우스와 설계·조달·시공(EPC)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향후 미국 원전 사업 구체화 과정에서 실제 수주로 연결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2027년이 원전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구간"이라고 평가했다. 장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의 공급망 금융지원과 한국의 대미 원전 투자 구체화가 맞물리면서 미국 원전 관련 프로젝트의 진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두산에너빌리티, 美 AP1000 주기기 공급…추가 물량 기대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AP1000 공급망에서 직접적인 납품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를 공급한 경험이 있어 신규 미국 원전 사업에서도 기존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추가 수주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태형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전력의 웨스팅하우스 인수 시 AP1000 사업에서도 원자로용기(RV)·증기발생기(SG) 외 추가 공급 범위(Scope) 발주를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미투자 자금 집행에 따라 공기 단축 위해 동사가 생산하는 장납기 품목에 대해 선발주를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본사 전경.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는 제작기간이 긴 핵심 주기기다. 미래에셋증권은 대미 원전 투자 과정에서 기존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뿐 아니라 추가 기자재까지 두산에너빌리티의 공급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도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지원으로 장납기 기자재 발주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봤다. 정 연구원은 "지난 6월 DOE가 발표한 장납기 기자재 조달 대출 프로그램에 따라 최종투자결정(FID) 이전 주요 기자재 발주가 가능해졌다"며 "AP1000 핵심 장납기 기자재 공급업체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주가 당겨지면서 원전 기자재 생산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특히 KB증권은 향후 가장 먼저 나올 대형원전 기자재 발주 대상으로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전력사업자가 구성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의 장납기 기자재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미국 신규 원전 사업이 구체화될 경우 두산에너빌리티가 다른 원전 밸류체인 업체보다 먼저 수주를 가시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현대건설, 웨스팅과 EPC 협력…美 사업 확대 기대 현대건설은 기자재가 아닌 EPC 분야에서 웨스팅하우스와 직접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2022년 웨스팅하우스와 AP1000 글로벌 사업 공동 참여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고 향후 프로젝트별 계약을 통해 EPC 분야 우선 참여 협상권을 확보했다. 이후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은 실제 해외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4년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설계계약을 시작으로 슬로베니아 원전 타당성조사, 핀란드 원전 사전업무착수 계약에 참여했으며 미국 페르미 아메리카의 프로젝트 매터도어에서는 기본설계(FEED)를 수행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공동으로 글로벌 확대 추진 중인 대형원전 AP1000 조감도. [사진=현대건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파트너십을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진출 경쟁력으로 평가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웨스팅하우스 노형의 경우 벡텔과 함께 핵심 건설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원전 영역에서 실질적 수주와 착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 지원, 웨스팅하우스와 잠재적 파트너들과의 의향서(LOI), 그리고 한국의 대미투자 가능성 등을 감안 시 미국 내 원전 프로젝트가 조만간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프로젝트 참여 가시성도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김도엽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형원전은 팀코리아 및 웨스팅하우스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며 "불가리아 AP1000 대형원전은 하반기 중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ESC) 2차 계약 체결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 BHI, 美 AP1000 복수기 공급…BOP 수주 주목 비에이치아이도 미국 AP1000 공급 실적을 갖고 있다. 비에이치아이는 발전용 설비를 설계·제작하는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주력 제품인 배열회수보일러(HRSG)와 함께 원자력발전 보조기기(BOP)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는 복수기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 원전 BOP는 아직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리딩투자증권이 제시한 올해 2분기 기준 매출 구성은 HRSG가 65%로 가장 높고 보일러 22%, BOP 5%, 기타 8% 순이다. 미국 신규 원전 발주가 본격화될 경우 현재 비중이 낮은 BOP 사업이 추가 성장 축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비에이치아이 로고. [사진=비에이치아이] 한제윤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에이치아이의 수주 흐름과 관련해 "연간 신규 수주는 올해도 1조원을 상회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올해 상반기 HRSG 신규 수주는 약 5000억원이며, 하반기에도 약 4000억원 이상의 프로젝트가 수주 대기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한 연구원은 미국 텍사스에서 추진되는 대미 투자 1호 가스복합화력발전 사업과 관련해서도 비에이치아이의 직접적인 수혜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HRSG 8~10기 발주를 가정할 경우 잠재 수주 규모를 약 4000억~5000억원으로 추정했으며 과거 미국 칼파인(Calpine)에 HRSG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는 점도 수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제시했다. 조재원 키움증권 연구원도 대미 투자에 따른 미국 사업 확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조 연구원은 "미국 시장 진입이 현실화될 경우, 추가적인 멀티플 확장을 기대한다"며 비에이치아이가 미국 사업에 진입할 경우 기존 국내와 아시아 중심의 사업 지역을 북미로 확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winter1004@newspim.com 2026-09-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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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은, 女공기권총 10m 금메달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사격의 에이스 추가은(임실군청)이 눈부신 총성을 울리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 일곱 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한국 사격이 거둔 첫 번째 금메달이다. 세계랭킹 23위 추가은은 일본 도요타시 아이치 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여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 결선에서 246.3점을 쏴 셴이야오(중국)를 무려 5.0점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추가은은 고니시 유카리가 2017년 세운 결선 아시아 기록(245.3점)과 팔락(인도)이 항저우 대회에서 세운 아시안게임 기록(242.1점)을 모두 갈아치우는 기력을 발휘했다. 조라나 아루노비치가 세운 세계기록(246.9점)에도 불과 0.6점 모자란 엄청난 기록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앞서 열린 본선에서도 추가은의 활약은 빛났다. 추가은은 582점(엑스텐 19개)을 기록해 종전 아시안게임 본선 기록을 1점 경신하며 전체 1위로 결선에 올랐다. 김보미(부산시청), 오예진(IBK기업은행)과 함께 나선 단체전에서도 1,730점을 합작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이 종목 단체전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은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다만 김보미와 오예진은 각각 574점(엑스텐 22개, 20개)으로 10위와 12위를 기록해 8위까지 주어지는 결선행 티켓을 아쉽게 놓쳤다. 두 선수 모두 8위와 1점 차에 불과해 아쉬움을 삼켰다. 홀로 결선 무대에 선 추가은은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결선 첫 번째 스테이지 첫 발을 10.1점으로 기분 좋게 출발한 그는 네 발을 모두 10점대 언저리에 맞추며 51.8점으로 단숨에 선두에 올랐다. 두 번째 시리즈 초반 주춤하기도 했으나 10.3점으로 마무리하며 청연칭, 셴이야오, 장란신 등을 제치고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본격적으로 한 명씩 탈락하는 엘리미네이션 스테이지에 접어들면서 추가은의 독주가 시작됐다. 10.1점과 10.7점을 연달아 꽂아 넣은 뒤,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10.8점과 10.7점에 적중하며 143.9점을 기록해 2위 셴이야오와의 격차를 벌렸다. 세 번째 시리즈가 끝난 뒤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다른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하는 사이 추가은은 더욱 달아났다. 셴이야오에 4.1점 앞선 상황에서 맞이한 마지막 시리즈에서도 10.6점과 9.8점에 적중하며 완벽하게 우승을 확정 지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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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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