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ARM인수 규제당국의 승인까지 험로 예상"
美, 화웨이 제재...삼성전자 '반사이익' 전망
[서울=뉴스핌] 김세원 기자 = 미국 반도체회사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홀딩스를 인수한다는 공식발표가 나온데 이어 미국 정부의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가 발효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 대비 2.38%(1900원) 상승한 8만1900원에 장을 마쳤다. 삼성전자는 전장 보다 0.99%(600원) 오른 6만1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ARM을 소프트뱅크로부터 400억달러(약 47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다. 현재 ARM의 지분은 소프트뱅크와 자회사인 비전펀드가 각각 75%, 25% 보유하고 있다. M&A가 성사되면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의 지분을 약 6.7~8.1% 보유하게 된다. 엔비디아는 소프트뱅크에 매입대금으로 215억달러 규모의 보통주와 현금 120억달러를 지불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최근 3개월 주가 흐름 [사진=네이버금융] |
◆ 글로벌 반도체 지형 변화 예고..."ARM 오픈 라이선스 정책 '관건'"
관련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이번 인수가 글로벌 반도체 업계 지형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엔비디아는 PC용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다. 엔비디아는 수년 전부터 주력인 GPU외에도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분야로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사업 다각화에 성공하며 지난 7월에는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인텔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반면 ARM은 반도체 기본 설계도를 만들어 반도체 업체에 판매하는 기업이다. 특히 전 세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의 95%가 ARM의 설계 지적재산권(IP)을 사용할 정도로 독점적인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메가 딜로 엔비디아가 모바일 분야로까지 영향력을 넓힐 수 있게 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는 ARM의 기술력 흡수를 통해 자사 칩 설계 핵심 역량이 강화됐으며 베이스 아키텍처 기술 내재화를 통해 경쟁사 대비 최종 제품 설계가 최적화됐다"며 "향후 타 업체와 비즈니스 협상 시 우월한 위치 선점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시장이 주목하는 부분은 ARM의 오픈 라이선스 정책 변화 여부다. ARM의 기본 설계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데, 향후 이 비용이 대폭 인상될 경우 국내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엔비디아는 기존의 ARM 사업 모델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이번 인수를 발판 삼아 모바일 AP 제작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경우 삼성전자와의 경쟁도 피할 수 없게 된다.
◆ 주요 당사국 이해관계 복잡..."승인까지 최대 18개월 예상"
증권업계에서는 관련 국가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M&A가 규제당국의 최종 승인을 얻기 전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영국과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당사국의 승인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넘어야 한다. 승인을 얻기까지는 최대 18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과거 퀄컴의 사례를 돌이켜볼 때 인수가 마무리될 때까지 험로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6년 미 반도체 기업 퀄컴은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인 NXP 인수를 추진했으나 중국 경쟁당국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의 승인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면서 인수합병은 사실상 무산됐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영국은 자국의 반도체 기업이 일본인에 의해 미국에 팔리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고, 미·중관계를 감안할 때 중국도 순순히 이를 허가해 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반도체라는 특성상 국가와 기업들 간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 딜 클로징까지는 여전히 험난한 길이 펼쳐져 있다"고 분석했다.
류영호 미래에셋대우 연구원도 "엔비디아와 직접적으로 사업이 겹치지는 않지만 ARM의 IP를 사용하는 업체들은 엔비디아와 잠재적인 경쟁관계"라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과거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한 상황만큼 쉽게 양사 간의 합병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비디아 [사진= 로이터 뉴스핌] |
◆ 화웨이 제재, 반도체업계 '긴장'...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는 '강세'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 초대형 M&A가 성사된데 이어 이날부로 미국의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까지 발효되면서 국내 반도체업체를 둘러싼 긴장감은 고조되는 모양새다. 추가 제재안에 따라 미국 업체의 기술을 조금이라도 활용한 반도체 기업이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미 상무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화웨이 제재로 국내 기업들의 수출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5대 매출처 중 한 곳인 동시에 SK하이닉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달하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미 정부에 라이선스를 요청했지만 승인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IT·모바일(IM) 부문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올 3분기 호실적을 내놓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화웨이 반사이익과 시장 점유율 확대 효과로 2018년 3분기 이후 2년 만에 사상 최대 영업이익 달성이 예상돼 어닝 서프라이즈를 시현할 것"으로 전망했다.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가 점쳐지면서 주가도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지난 14일 종가를 기준으로 6만원을 돌파했다. 종가 기준 삼성전자의 주가가 6만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2월 20일 이후 처음이다. 증권사도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하나금융투자는 목표주가를 종전의 8만원에서 8만6000원으로 올려잡았다. KTB투자증권은 7만3000원에서 7만5000원으로 목표주가를 올렸다.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SK하이닉스는 당초 휴대폰 포트폴리오를 갖춘 삼성전자보다 화웨이 제재로 인한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예측됐으나 이미 악재의 상당 부분이 주가에 선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화웨이 추가 제재가 발효된 이날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장중 강세를 보였다.
김동원 연구원은 "SK하이닉스 주가가 D램 가격 하락과 미국 화웨이 제재 등의 악재를 이미 선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saewkim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