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월가의 트레이더는 물론이고 석유업체까지 원유 선물 사재기에 잰걸음을 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이 사들인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이 지난해 5월 이후 최고치에 이른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국제에너지기구(EIA)가 원유 수요 전망치를 낮춰 잡은 상황과 엇박자를 낸 셈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2021년 금융 리플레이션에 대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달러화 반등에도 비관론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도 같은 맥락이라는 판단이다.
19일(현지시각) 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투기 거래자들을 포함한 금융업계와 석유 업체들이 축적한 원유 선물 미결제 약정이 490만계약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5월 이후 최고치에 해당한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440만계약을 간신히 웃돌았던 수치가 단기간에 수직 상승한 셈이다.
11월3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당선인이 승기를 잡은 데 이어 연초 조지아주 결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상원 2석을 모두 차지, 이른바 블루웨이브가 현실화되자 투자자들 사이에 리플레이션 기대감이 크게 확산됐다.
원유 [사진=로이터 뉴스핌] |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란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부추기는 정책이 펼쳐지는 시나리오를 겨냥, 경기 확장 및 물가 상승이라는 양대 축을 근간으로 투자 자산을 거래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워싱턴 정치권을 장악한 가운데 조 바이든 46대 대통령 당선자가 공식 취임 후 공격적인 재정 확대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장 코로나19 지원금을 6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인상하는 방안을 포함해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가 물가를 끌어올리는 한편 달러화에 하락 압박을 가하고, 이는 다시 주식을 포함한 전반적인 자산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벌어질 전망이다.
최근까지 원유 선물 사재기가 두드러진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골드만 삭스와 JP모간 등 주요 IB들이 일제히 상품시장 슈퍼 사이클을 예고하면서 원유 선물 '사자'를 부추겼다는 해석이다.
해리 칠링구리안 BNP 파리바 원유 전략가는 이날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상품 투자에 다시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움직임"이라며 "원유 선물 미결제 약정 급증은 매크로 펀드가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 163개에 달하는 머니매니저가 브렌트유와 WTI에 대해 상승 포지션을 취했다. 이는 지난해 2월 이후 최고치에 해당하며, 9월 저점 94개에서 대폭 상승한 수치다.
이날 IEA는 보고서를 내고 2021년 지구촌 원유 수요를 하루 9660만배럴로 제시했다. 이는 앞서 제시한 전망치에서 30만배럴 소폭 하향 조정한 것이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경제 봉쇄가 재개되는 상황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IEA는 전했다.
미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지만 월가는 여전히 올해 강한 경기 회복을 점치고 있다. 골드만 삭스를 포함한 IB 업계는 인플레이션 상승을 겨냥한 원자재 비중 확대를 적극 추천한다.
아울러 세계은행(WB)은 올해 전세계 경제 성장률이 4%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세계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7.9% 성장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와 함꼐 약달러 전망 역시 유가 상승 베팅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조지아주 결선 이후 장기물을 중심으로 미국 국채 수익률이 큰 폭으로 뛰면서 달러화 역시 상승 모멘텀을 얻은 상황.
하지만 월가의 큰손들은 달러화 상승이 단기적인 현상에 그치는 시나리오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달러화 하락 베팅이 최근 한 주 사이 25만8111계약을 집계됐다.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에 따르면 월가의 달러화 순매도 포지션은 지난해 9월 이후 최고치로 뛰었다. 달러 비관론은 2018년 4월 이후 가장 크게 부각된 상황이다.
달러화 약세는 일반적으로 상품 가격에 호재로 작용한다. 유가 이외에 구리와 철광석 등 주요 금속 상품의 강세 전망이 꼬리를 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