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 신경써가며 소분하자니 그 수고 만만치 않아"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를 약국·편의점에서만 소비자 1인당 5개 이하로 6000원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유통개선조치가 다음달 5일까지 시행된다. 일부 편의점은 의료기기 판매자 신고를 하지 않았어도 키트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자가진단키트 유통 현장을 뉴스핌이 15일 취재한 결과 일선 약국 관계자들은 대량으로 납품되는 키트 제품을 직접 낱개로 소분 포장해 팔아야 하는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들었다.
이들이 도매업체로부터 납품받는 키트 제품은 상자 단위로 들어오는데, 상자당 보통 25인분의 ▲검사용 디바이스 ▲용액통 ▲노즐캡 ▲멸균 면봉 등이 해당 구성품별로 포장돼 들어 있다. 일선 소매업체에서 고객에게 판매하기 위해선 이들 구성품을 하나씩 모아 1명분 키트 세트를 구성해 새로 지퍼백에 포장해야 한다.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서울 송파구의 한 편의점이 도매업체로부터 납품받은 키트 제품. 사진과 같이 키트 구성 품목별로 포장돼 있다. 2022.02.15 yoonjb@newspim.com |
약사들은 이 과정에서 위생 관리가 취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최모 약사(47)는 "위생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소독까지 해 가며 위생적인 환경에서 소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구매자의 심리적인 꺼림찍함까지 없앨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소분 포장하는 일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 부담스럽다고 토로한다. 영등포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최모 약사(40)는 "한 사람이 (25인분이 든) 키트 상자 하나의 내용물을 소분 작업하면 20~30분 정도는 걸린다"며 "인력 한 명이 그 작업에 묶여 있으면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소분에 필요한 지퍼백이 동봉돼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아 소매업자가 자기 부담으로 지퍼백을 구해야 한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개별 포장이 안 돼 있으므로 반품이 원활하지 않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서울 뉴스핌] 윤준보 기자 = 서울 송파구의 한 약국에서 자가진단키트를 판매하기 위해 소분 포장해 놓은 모습. 2022.02.15 yoonjb@newspim.com |
편의점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 관계자 송모 씨(50)는 "박스 단위로 납품되니 개별 구성품이 섞이고, 어떤 상자엔 특정 구성품이 덜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며 "매대 근무자들도 이를 다루는데 서툴어 일선 판매현장에서 소분 작업을 하기엔 애로가 있다"고 전했다.
반면 소분 작업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른 편의점 관계자 박모 씨(45)는 "본사에서 바르게 소분하는 요령이 자세히 나온 설명서와 사진을 내려 주는데 그대로 따라하면 별로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관계자는 공장에서 출하될 때 소분 작업이 이뤄지면 좋겠다며 소분 작업을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방안을 주장하기도 했다. 최모 약사(40)는 "지난해 마스크를 소분할 때도 공무원들이 잠깐이나마 지원돼 소분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며 "국가적 재난을 맞아 약사들이 희생하는 만큼 그 정도 지원은 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자가진단키트 공급에 약국과 편의점의 유통망을 이용하기로 한 것 자체는 잘한 결정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약국과 편의점의 접근성과 가격 안정성, 유통 속도 등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약국을 운영하는 최모 약사(47)는 "약국에서 파는 약 제품은 가격도 크게 안 변하고, 도소매 간 공급망이 효율적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편의점 관계자 송모 씨(50)도 "편의점은 24시간 운영되고 가격도 정가를 받는다"며 편의점이 자가진단키트 공급의 장으로서 유리한 데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편의점 측에선 온라인 유통을 막은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키트 공급을 더욱 수월하게 해 주는 통로를 막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배송 시간이 길어 구매 접근성이 떨어지고 오프라인보다 높은 가격으로 형성되는 불공정 행위가 다수 발생한다는 점을 온라인 판매 제한의 배경으로 밝힌 바 있다.
편의점 관계자 박모 씨(45)는 "유증상자가 굳이 약국을 가지 않고도 키트를 구할 수 있는 길을 막을 필요가 있느냐"며 "정부에서 가격을 정해주고 그것이 보편적인 가격이 된 이상 과도하게 폭리를 취한 상품이 나와도 팔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yoonjb@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