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핌] 양진영 기자 =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바람의 향기'가 느릿한 속도로 가만히, 누구나 갖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내면을 들여다본다.
5일 개막작 '바람의 향기' 상영으로 3년 만에 정상 개최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이 올랐다. 이란 출신의 하디 모하게흐 감독은 빠르게 변화하고 고도의 기술로 무장한 현대 사회 속 가장 느린 사회와 불편한 사람들을 영화에 담아냈다. 이란 서남부 데다쉬티 지역에서 그들의 속도로 살아가는 이들, 몸이 불편한 이웃을 돕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람의 향기'의 한 장면 [사진=부산국제영화제] 2022.10.05 jyyang@newspim.com |
◆ 느릿한 템포로 관조하는 듯한 시선, 작품 주제와 맞닿은 듯
이란의 외딴 시골 마을, 하반신 장애가 있는 남자가 전신마비 아들과 함께 살던 중 전기가 끊어진다. 전화 한 통을 빌려쓰기 위해 길을 나선 그는 한 노인을 만나 바늘에 실을 꿰어주고 양봉을 하는 남자에게 겨우 휴대폰을 빌린다. 마을을 찾아온 전기기사는 고장난 부품을 교체하려 이리저리 다니지만, 가는 곳마다 장애물을 만난다.
장애를 지닌 남자는 불편해 보이지만 그의 삶을 충실히 살아낸다. 불평도 불만도 없이 아주 느릿하게, 그만의 속도로 생계를 잇고 아들을 간호하고 전화를 빌리러 떠난다. 전기를 어떻게든 이어주고 도움을 주려는 전기기사에게도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라는 당연한 인사만을 건넨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람의 향기'의 한 장면 [사진=부산국제영화제] 2022.10.05 jyyang@newspim.com |
주인공인 전기기사는 도무지 외면할 수 없는 처지의 남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전기 부품을 찾으려 이곳 저곳을 다니다 자동차가 개울에 빠지지만, 다행스럽게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한다. 전기를 고치는 일이 여의치 않자, 심지어는 휴가를 쓰고 사비를 털어 장애를 가진 남자와 아들을 돕는다.
◆ 비참함이나 불쌍한 감정이 아닌, 아주 오래된 공존을 말하다
전기기사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넘어서서까지 측은지심을 발휘하는 일은 일면 훌륭한 일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든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그저 스스로의 마음이 불편하거나 돕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동정심이나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비참함에 주목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저절로 피어나는 인간 본연의 감정, 인간성의 본질이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람의 향기'의 한 장면 [사진=부산국제영화제] 2022.10.05 jyyang@newspim.com |
전기 부품 하나를 가져오는데 며칠 씩 걸리고, 개발이라곤 전혀 되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인 마을의 풍경은 놀라우면서도 자연스럽다. 기술과 문명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불편한 이들은 불편함을 모른 채 아주 오래된 방법으로 살아간다. 장애를 받아들이는 이도, 바라보는 이도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장애가 있든 없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만나고 서로 돕는다.
특별히 전기기사가 전기가 끊긴 집을 향해 갈 때마다 전속력으로 과속을 하는 설정이 흥미롭다. 임시로나마 전기를 이어준 후엔 느긋한 속도로 집으로 향한다. 다수가 주목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아닌, 공존을 위한 이타심에 주목한 감독은 미묘한 심리도 효과적으로 캐치해냈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