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밀 협업' 마트·편의점 "사업종료 몰랐다...당혹"
앞다퉈 대체협력사 물색하고 대체 상품 검토
400여명 해고통보...푸르밀 노조, 신동환 대표 규탄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유가공업체 푸르밀이 돌연 내달 말 사업을 접겠다고 밝힌 가운데 푸르밀과 PB상품 계약을 맺은 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계에 불똥이 튀었다. 갑작스러운 사업 종료 통보로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은 임직원들도 반발에 나서는 등 후폭풍이 일고 있는 모습이다.
18일 푸르밀에 따르면 회사는 내달 30일 사업을 종료한다. 푸르밀은 전날인 17일 전 직원 400여명에게 이같은 내용과 정리해고를 통보했다.이와 함께 푸르밀은 PB상품을 제조해 납품하던 유통업체들에 사업종료에 대한 사전고지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날인 17일 푸르밀의 사업 종료 소식을 접한 유통업체들은 부랴부랴 대체 업체 검토에 나섰다.
왼쪽부터 신동환 푸르밀 회장, 푸르밀 기업 로고. [사진= 사측] |
이마트의 노브랜드는 현재 푸르밀을 대신해 '노브랜드 굿모닝 우유'를 제조할 대체 업체를 물색하고 있다. 노브랜드는 '노브랜드 굿모닝 우유'를 비롯해 초코우유, 검은콩 우유 등 9개 제품을 푸르밀 PB상품으로 운영 중이다.
대표 제품인 노브랜드 굿모닝 우유의 경우 1000ml에 1580원의 초저가 상품으로 인기가 높은 제품이다. 이마트는 푸르밀을 비롯해 데어리젠, 부산경남우유협동조합 등 3사와 함께 만들고 있어 큰 문제는 없지만 푸르밀 물량을 대신할 업체를 발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11월까지 푸르밀이 제품을 납품할 예정이며 그 이후 대체업체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시그니처 하루한컵 요거트', '시그니처 마시는 요거트' 등 5개 PB제품을 푸르밀과 협업해 운영하고 있다. 푸르밀 자체 제품은 10종을 취급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가공유 등 유제품에서 푸르밀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 내외로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아직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은 만큼 내부적으로 대체 협력사 발굴, 신상품 개발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편의점업계도 푸르밀을 대체할 협력사 물색에 분주한 상황이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푸르밀과 협업해 PB상품 헤이루 초코 프렌츠 우유, 헤이루 바나나 프렌즈 우유 등 2종을 판매하고 있다. 이마트24는 '하루e한컵 우유'를 운영하고 있다.
양사도 마찬가지로 전날 푸르밀 사업 종료 소식을 전달받았다. 양사는 아직 푸르밀과 언제까지 물량을 공급할 것인지 등 정확한 시기 조율도 되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진다. 통상 유통업계의 PB상품 공급 계약은 1년 단위로 이뤄진다. 업계에서는 푸르밀이 연말까지 한 달을 남겨두고 사업 중단을 결정한 것이 다양한 계약사항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연말이 다가오는 11월쯤은 협력사 변경, 재계약 등이 이뤄지는 시기이긴 하다"라며 "유업체 중에서는 푸르밀이 생산규모가 꽤 되는 업체라 적지 않게 놀랐고 대체업체 찾기에 집중하고 있다"말했다.
푸르밀의 전신은 1978년 설립된 롯데우유다. 2007년 4월 롯데그룹에서 분사했고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대표 제품은 요거트 브랜드인 비피더스, 가나초코 우유, 검은콩이 들어있는 우유, 그리고 환원유 밀크플러스 등이다.
갑작스럽게 사측으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400여명의 임직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푸르밀 노조는 전날 신동환 푸르밀 대표에 폐업 및 정리해고 철회 내용증명 발송했다. 근로기준법 및 단체협약을 위배한 불법적인 해고라는 주장이다.
김성곤 푸르밀 노조위원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모든 적자의 원인이 오너의 경영 무능함에서 비롯되었지만 전직원에게 책임 전가를 시키며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푸르밀의 폐업 결정에 대해 "350명 직원들의 가정을 파탄시키며 죽음으로 내모는 살인 행위"라며 "관련된 직송농가들, 협력업체직원 약50명, 화물차 기사들 약 100명의 생계까지 끊어 놓으려 하고 있다"며 회사 측을 규탄했다.
과거 신준호 푸르밀 전 회장이 대선주조 매각 시 배임횡령 등으로 검찰조사를 받았던 것과 관련 이번 사업 종료 결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푸르밀이 제2의 대선주조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가한다"며 "회사 정상화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푸르밀 재직자의 복잡한 심경을 담은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푸르밀 임직원 A씨는 블라인드에 올린 글을 통해 "어릴 때 마시던 검은콩 우유, 엄마가 마트 다녀오실 때마다 사오셨던 비피더스, 기분이 울적한 날마다 자신을 위로해줬던 가나초코우유 등 추억과 애정 담긴 제품을 다룬다는 게 설렜기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입사했다"며 "당찬 포부를 갖고 들어온 이곳이 문을 닫아 참 많이 아쉽고 슬프다"고 토로했다. 해당 글은 온라인상에서 급속히 확산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푸르밀의 가나초코우유 [사진= 푸르밀 공식 쇼핑몰 갈무리] |
푸르밀은 가나초코우유, 비피더스의 흥행으로 한때 연 매출 3000억원을 올렸던 유가공전문업체다. 그러나 2018년 적자 전환한 이후 4년째 적자행진했다. 적자 폭도 늘어나 지난해에는 매출 1800억원, 영업손실 124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는 제품 품질 이상 등 악재가 잇따랐다. 지난 8월 21일 푸르밀은 가나초코우유 제품 일부에서 불량 누유가 확인돼 자발적 리콜을 진행했으며 같은 달 31일에도 품질 이상으로 검은콩이 들어있는 우유를 비롯한 가공유 제품 6종을 회수했다. 지난달 LG생활건강, SPC그룹 등에 매각을 추진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일각에서는 푸르밀 대표제품의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반면 한동한 히트제품이 뜸했던 점과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PB상품 중심으로 운영한 것이 적자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PB상품은 저장성이 낮은 유제품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유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 제품 대비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PB상품 위주로는 재투자 여력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며 "경쟁사들이 단백질식품 등 사업다각화에 매진할 동안 기존 사업 유지에 그쳤던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romeo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