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 대출잔액 112조, 자제 자금으로 상환할 판
거래부진 지속, 정부 지원 없으면 줄도산 공포
[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신용등급 A+로 우량한 건설사라도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쉽지 않다. 금리인상에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이슈와 아파트 분양경기 위축 등이 겹치며 상황이 악화됐다. 부동산 PF대출 관련해 차환이나 신규 발행이 어렵다 보니 자체 보유금으로 위기를 넘고 있는 건설사가 상당수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견, 지방건설사들은 부실 사업장 한곳 때문에 무너질 수 있는 분위기다."
이동훈 부동산부 차장 |
대형 건설사에서 재무를 담당하는 한 임원의 얘기다. 이처럼 건설사가 위태롭다. 주택경기 호황이란 달콤함에 취해있던 건설사들이 갑작스러운 금융권 자금경색에 난처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부실의 뇌관으로 떠오르면서 자금력이 충분치 않은 기업들이 잇달아 쓰러질 것이란 우려감마저 감돈다.
우선 실적이 예년만 못해 사내 현금이 충분치 않다. 원가 상승과 공사기간 지연, 금리인상의 영향이 크다. 사업예산의 10% 안팎의 마진율을 계산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대출이자, 원자재값 상승분을 감안할 때 사업을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분양이 늘면서 미청구공사, 매출채권도 덩달아 뛰어 잠재 손실이 쌓이는 것도 부담이다.
사실 기초체력을 어느 정도 갖춘 건설사라면 실적 부진이란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 필요한 자금은 회사채, 기업어음으로 마련하고 그것도 안되면 유상증자라도 진행해 보릿고개를 넘으면 된다.
더 큰 어려움은 부동산 금융의 꽃으로 불리는 부동산 PF가 사실상 중단된 것이다. 당장 만기가 돌아오는 어음이나 채권을 상환하지 못하면 보증을 선 건설사가 고스란히 유동선 문제를 떠안아야 한다. 실적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단시간에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의 현금을 마련해 지정된 날짜에 갚아야한다. 대형 건설사들이 보유한 부동산 PF 규모는 수조원에 달한다.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논란 이후 채권시장이 차갑게 얼어붙은 것이 있지만 주택경기 악화에 부동산 PF에 대한 신뢰도가 악화한 영향도 크다. 사업성을 담보로 이뤄지는 대출 상품이다 보니 경기 위축, 미분양 확산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룹사를 모기업으로 둔 건설사도 예외는 아니다. 한 건설사는 계열사 지원으로만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마련할 정도로 현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형 건설사가 이정도 인데 중견 건설사나 지방 건설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사업장 한 곳만 삐끗해도 부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오래 버틸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웬만한 대기업이라도 금융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기업 스스로 운영자금을 온전히 마련하기란 한계가 존재한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부동산 금융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유동성 지원 카드를 내놓았지만, 시장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정부는 부동산 PF 보증을 당초 내년 2월에서 같은 해 1월로 한 달 앞당겨 시행하기로 했다. 부동산 PF 사업자의 보증규모를 10조원에서 15조원으로 늘리고 5조원 규모의 미분양 PF 보증 상품을 신설해 준공 전 미분양 사업장도 PF 대출을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올해 6월 말 기준 전체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12조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주택시장 거래 정상화도 풀어야할 숙제다. 금리인상과 집값 하락 우려에 올해 주택 거래량은 전년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집값 상승은 견제하되 급격한 시장 경착륙을 막을 수 있도록 실수요자에 대한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과거에도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양도소득세 비과세, 취득세 면제 등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늘려준 바 있다.
부동산 PF 위기는 건설사 피해로만 끝나지 않는다. PF 자산유동화에 참여한 은행, 제2금융권 등을 비롯해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건설업 연관 사업에 종사하는 수백만명의 근로자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가 위기감을 느끼고 자금 지원과 시장 정상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길 기대한다.
leed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