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농사 짓는 평북 출신 김복희 씨
어린 시절 배꽃 추억이 이젠 감귤로
"제주가 고향처럼 친근한 곳 됐어요"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제주는 북한 사람들에게 꿈 속에서나 만날 선망 속 섬이다.
한반도의 끝자락 남녘 따뜻한 곳에 감귤과 파인애플이 자란다는 이야기를 몰래 접하다보면 신비감에 휩싸이기까지 한다는 얘기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평북 출신 탈북민 김복희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제주 감귤농장에서 생산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남북하나재단] 2023.03.29 yjlee@newspim.com |
한때 제주에서 남북 회담이 열릴 때면 북한 측 대표단 선발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서울 회담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제주 한 번 가보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는 것이다.
5년 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김복희 씨는 제주 서귀포에서 감귤농장을 운영한다.
평북 출신인 그가 목숨을 걸고 탈북해 제주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어엿한 농장 사장님이 됐으니 "출세도 이런 출세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아버지 찾아 북중 국경 넘었다가 20년 넘게 중국생활
김 씨의 고향은 평안북도의 한 시골 마을이다. 6남매를 둔 그의 부친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출신이었는데 1996년 갑자기 실종됐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겁도 없이 국경을 넘어 고모 집을 갔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당시는 북한 주민 수 백만이 굶어 죽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힘들어 '고난의 행군'이라 불린 대기근 사태가 한창일 때였다. 고모는 굶어 죽는 북한 땅보다는 중국에 숨어사는 게 낫다는 생각에 조카딸을 붙잡았다.
하지만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소도시에 탈북민이 점점 많아지자 수시로 공안이 들이닥쳤다.
할 수 없이 고모는 하얼빈에 있는 먼 친척에게 김 씨를 부탁했고,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고 아이를 봐주며 세월을 보냈다.
피난처처럼 택했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딸이 태어났다. 딸은 고등학교 마치자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했다.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 김 씨는 2018년 딸과 함께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제주에 정착한 탈북민 김복희 씨가 자신의 감귤하우스에서 남편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남북하나재단] 2023.03.29 yjlee@newspim.com |
김 씨는 "서울살이는 참 힘들었다"며 "이렇다 할 기술도 없어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며 돈을 벌어 딸을 공부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제주에 사는 농부를 알게 됐고 전화로 장거리 연애를 하다 결혼에 골인했다.
김 씨는 "제주에 살 결심을 하게 된 건 고향 마을에 대한 추억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꽃이 만발하던 고향 마을과 제주의 귤밭이 오버랩 됐고 "땅에 진심을 쏟아보자"는 결심에 농부가 됐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어려운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처음 농업기술센터 교육에 참가했을 때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기초가 없으니 금시초문인 단어도 많아 강의 내용의 30% 정도만 알아들었다고 한다.
남편도 오랜 기간 제주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새로운 분야나 기술에는 자신없어 했다.
◆농업 강의 30%만 알아들어...남북하나재단 도움 받아 도전
이 때 그에게 큰 힘이 된 건 탈북민 정착 지원을 담당하는 남북하나재단의 '영농 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이었다.
김 씨는 "농사는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며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기술도 필요하고 자금도 많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노력 끝에 신품종 스테비야 감귤 재배에 과감하게 도전했고 지금은 다른 신품종 재배를 위해 필요한 교육도 받고 있다.
요즘 김 씨가 각별히 챙기는 건 유통이다. 이런저런 노력 끝에 아무리 좋은 품질의 감귤을 생산한다해도 결국 성패는 유통이 좌우한다는 판단에서다.
인터넷과 블로그, 스마트 스토어 등에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백화점과 농협 등에 귤을 출하하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아 택배로 발송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유통은 그에게 큰 숙제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김 씨는 체험농장도 운영하고 있다. 10월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품종에 따라 귤이 출하되는데 때맞추어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과 학생들에게 직접 귤을 따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감귤하우스 한편에는 정원수와 동백나무, 금목서, 은목서, 목련 등을 하우스 옆에 심고 수국, 모란, 야자수 묘목도 재배한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으나 하우스 옆 작은 땅을 이용하여 키운 정원수로 지금은 짭짤한 부수입도 준다.
김 씨는 요즘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4계절 이어지는 귤 농사는 시작도 좋아야 하지만 끝이 중요하더군요"라고 말했다. 마치 그의 삶을 두고 하는 얘기처럼 들렸다
목숨을 건 탈북과 고난 속의 중국 체류 생활, 낯선 한국 땅에서의 정착을 이뤄낸 김 씨는 인생 후반전을 성공과 행복으로 물들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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