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동탄 전세사기 확산에 無융자 주택 선호
'보증금 떼일까' 집 상태 좋아도 근저당 비중 크면 꺼려
집값 내려가면 세입자도 낭패...월세 낀 준월세·전세 증가
[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매물의 융자금 상태부터 물어보는 경우가 늘었어요. 근저당이 많이 잡혀 있으면 아무리 상태가 좋은 집도 계약을 안하겠다는 분위기에요."(인천 미추홀구청 인근 A공인중개소 대표)
인천과 경기도 동탄 등까지 전세 사기 피해가 확산하자 전세 세입자들이 주택을 결정하는 데 융자금 규모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연이어 발생한 전세 사기의 경우처럼 선순위 근저당 규모가 크면 집주인이 채무불이행이 빠질 경우 세입자가 보증금을 온전히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값 하락기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가중할 것이란 분위기다.
◆ 보증금 떼일까..."융자 없는 걸로 보여주세요"
2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세를 찾는 세입자들이 매물의 융자금 규모가 클 경우 계약을 꺼리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청 인근 A공인중개소 대표는 "전세 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전세를 찾는 세입자들이 융자금이 많으면 아예 집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며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커져 집 상태보다 소액이거나 '무(無) 융자' 매물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정일구 기자> |
인천과 경기도 동탄 등에서 발생한 전세 사기 이후 전세를 찾는 세입자들이 집을 선택하는 데 매물의 융자금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집주인의 채무 불이행으로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임의경매에 나설 경우 후순위권자인 세입자가 보증금 전액일 떼일 수 있어서다. 세입자들이 소액 융자나 융자금이 아예 없는 주택을 찾는 이유다.
융자가 없는 주택이 가장 안정하겠지만 융자가 있다면 선순위 근저당 금액과 전세금을 합쳐 시세의 50~60%를 넘지 않는 게 좋다는 게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시장 상황과 입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경매로 넘어가면 아파트는 시세 대비 60~70%, 빌라는 50~60%에 낙찰되는 게 일반적이다. 현재 시세를 담보 가치로 판단하면 향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집값 하락기에는 매물의 담보가치를 더욱 보수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재계약 시기가 도래할 경우 애초 계약할 당시의 집값과 보증금 수준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거래량이 적은 빌라는 역전세 상황에 놓이면 전세금을 제때 회수하기 힘들다.
동탄신도시 동탄역 부근 B공인중개소 실장은 "아파트, 오피스텔, 빌라 등의 시세와 전셋값이 최고가 대비 20~30% 하락하다 보니 기존 세입자들도 보증금 전액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며 "신규 전세는 집주인이 융자금을 줄이고 감액 등기를 마치는 조건이 붙어야 거래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월세 낀 준월세·전세 거래 확산 불가피
전세 사기 공포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면서 세입자가 전세보다는 월세, 준전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임대차시장에서 월세를 낀 임대거래가 늘고 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이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 서울 빌라(다세대·연립) 전월세 거래량은 2만7617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전세 거래량은 1만4903건으로 전체 거래의 54.0% 차지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1분기 기준 가장 적은 수치다. 반면 준월세와 준전세의 비중은 증가세다. 올해 1분기 서울 빌라 준월세, 준전세 거래량은 각각 8417건, 3223건으로 비중이 30.5%, 11.7%에 달했다. 특히 준전세 비중의 경우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증금 비중을 낮춘 준월세와 준전세 거래가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주택담보대출 금액과 전세금을 합한 금액이 집값의 80퍼센트를 넘어선 깡통 전세가 전체 주택의 40% 정도로 추정된다. 집값이 추가 하락할 경우 이 수치는 더 높아질 여지가 있다. 전세 사기 피해를 우려한 세입자들이 높은 보증금을 부담하기보단 월세를 일부 포함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심리도 강하기 때문이다.
황한솔 경제만랩 리서치연구원은 "깡통전세와 전세 사기 등의 문제로 빌라 전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전세 비중은 점차 줄고, 준월세나 준전세로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라며 "피해 사례가 확산할 것으로 보여 월세를 낀 주택을 선호하는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eed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