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관행 바로잡을 입법 조치 반드시 필요"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피고인은 무죄"
법관은 장시간 형사재판을 받은 피고인에게 이 한마디를 말하기 위해 검찰이 낸 수많은 증거와 변호인의 주장을 면밀히 살핀 후 결론을 낸다.
법관의 판결로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며 무죄를 외치던 피고인은 혐의를 벗고 법정을 빠져나가는 반면 사건의 피해자는 이제 법원을 상대로 판결의 부당함을 따져야 한다.
이성화 사회부 기자 |
이러한 상황은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도 벌어졌다. 다만 피해자의 목소리가 법원뿐만이 아닌 국회를 향했다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법원은 고(故) 이예람 중사의 사망 사건을 수사하던 군검사에게 부당한 위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전익수 전 공군 법무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미영 특별검사팀은 전 전 실장을 기소하면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면담강요등) 혐의를 적용했는데 전 전 실장이 위력을 행사한 상대방인 군검사는 해당 규정에 따른 범행 객체에 포함될 수 없어 전 전 실장을 특가법 제5조의9 4항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보복범죄 가중처벌 조항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증인이나 참고인을 위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일반 검사나 군검사 등 수사기관까지 보호대상을 확장해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전 전 실장이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수사검사의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해 몰래 녹취까지 하면서 수사 중인 내용을 알아내려고 했다며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법원이 전 전 실장에 대해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는 것이 향후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이후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군 사법기관 등의 노력에 이 판결이 찬물을 끼얹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도 '피고인은 군검사가 답변이 어렵다고 하면서 수차례 정중히 거절했음에도 계속해서 군검사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상당한 부담감과 당혹감을 느끼게 했다', '군법무관으로서의 경력이나 지위, 그 당시의 상황 등에 비춰 피고인의 행동은 매우 경솔한 것으로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등 표현을 통해 전 전 실장의 행동이 명백히 잘못됐다고 설시했다.
전 전 실장의 유죄 판결을 기대한 이 중사의 아버지는 "규정이 없어서 처벌할 수 없다고 하니 여야 국회의원들께서 '전익수 특별법'을 만들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법 제정을 호소했다.
청년 변호사단체도 재판부가 지적한 입법 불비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군검사 보직을 맡는 20~30대 청년 법조인들은 다른 수사 주체에 비해 면담강요 행위 등에 상대적으로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입법적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피고인의 잘못된 행동을 인정했는데도 입법의 공백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피해자의 억울함과 고통은 더 극대화될 것이다. 법원이 판결문 곳곳에 남긴 고민의 흔적들을 국회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