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회, 행정부에 中 수출 규제 강화 전면 확대 촉구
국내 기업, 역대급 양극화에 1년 유예 연명 어려워
"빠른 판단 통해 '선택과 집중' 해야"
[서울=뉴스핌] 이지용 기자 = 반도체 패권을 놓고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균형 전략'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양국 모두 국내 기업들에는 중요한 반도체 수출처·파트너지만, 최근 중국의 급격한 반도체 기술 성장으로 미국의 규제가 강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심화된 '미중 양극화' 구도를 버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현지시간 14일 마이클 매콜 미 의회 하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 10명은 중국의 '화웨이'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SMIC'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를 전면 확대하도록 촉구하는 서한을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전달했다. 화웨이가 이달 출시한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에 SMIC가 개발한 7나노 첨단 반도체를 탑재하자, 미국 내부에서는 수출 규제 효과가 없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미 상무부의 수출 규제의 '구멍'에 대해 거듭 경고해왔다"며 "이런데도 상무부는 중국 공산단 통제 하의 기업들이 금지된 물품을 수입하도록 허가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초래됐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SMIC가 생산한 반도체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고, 화웨이와 SMIC, 이들 기업의 모든 자회사를 상무부의 거래 제한 명단에 올려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기업의 제품이 미국이 아닌 한국 등 제3국에서 생산되더라도 미국의 기술과 장비가 쓰였으면 수출 통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미중 갈등이 격화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 전략'을 버려야 한다는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반도체와 미국, 중국 국기 일러스트 이미지. [사진=로이터 뉴스핌] |
반면, 중국 관영매체 'CCTV'는 뤼팅제 중국우정전신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중국이 세계 최첨단 기술에 3~5년 뒤처졌다는 서방 국가들의 판단을 우리는 초월할 수 있다"고 전하는 등 미국의 규제에도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처럼 '화웨이 사태'로 인해 미국의 반도체 기술·장비에 대한 통제 및 감시가 더 세밀화되고 규제 위반 적발 시의 제재도 강화될 움직임이 커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두 국가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지난해 미국의 대(對) 중국 반도체 기술·장비 수출 규제에 대해 예외 대상으로 '1년 유예'를 받았지만, 더 이상 이 같은 유예로 연명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유예 시기도 다음달 종료되며 추가로 연장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을 통해 반도체 공급·제조·판매 등을 해 온 일종의 균형 전략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도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만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양국 사이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면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신뢰를 받지 못해 되레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게다가 일본과 네덜란드의 반도체 기업들도 미국의 규제 방침에 맞춰 이미 중국 수출을 중단하면서 미중 양극화 대결 구도가 더 심해진 만큼, 국내 기업이 빠른 판단을 통해 '선택과 집중'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SK하이닉스의 스마트폰용 D램 'LPDDR5'와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규제 대상인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에 포함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내 기업들의 대 중국 거래 및 반도체 유출에 대한 미국의 경계는 한층 높아진 상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의 미중 반도체 갈등은 과거 미·소련의 냉전체제와 미·일 무역 분쟁을 모두 합친 역대급의 긴장체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상황이 이런 만큼 국내 기업들은 더 이상 균형 전략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며, 한 국가를 선택해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중국의 반도체 기술 성장에 미국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만큼 미중 반도체 갈등이 당장 해소될 여지는 크지 않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기업들은 지금이라도 전략적 판단을 명확히 한 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 쪽에 힘을 쏟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국내 기업의 대 중국 수출 규모 및 산업 의존도가 작지 않고 미국과도 기술 협업을 하는 만큼 가능한 한 미중 균형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은 절대적으로 큰 수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섣불리 양자택일 할 경우, 당장 국내 기업의 피해만 커질 것"이라며 "미국과는 안보·경제를, 동시에 중국과는 무역을 중심으로 최대한 협업을 이어가는 전략을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leeiy52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