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리 소홀 등 과실로 피해"…입증이 쟁점
법원, 카카오·빗썸 사태서 과실 인정 여부 갈려
법조계 "소송서 구체적 손해 입증 쉽지 않을 것"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지난주 정부 행정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주민등록등본과 인감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발급받지 못한 민원인들이 속출했다. 전산망 장애 사태가 사흘간 이어진 탓에 행정시스템 관리 소홀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법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민원 서류가 필요한 은행과 부동산 거래에도 혼선을 빚으면서 피해를 본 국민들이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디지털정부의 민낯] 글싣는 순서
1. 세계 최고 외치더니, 원인 모른 채 봉합
2. 전문가 "총체적 관리감독 부실...시스템 재점검 서둘러야"
3. 대기업 제한입찰제 도마···현실 반영해 손질해야
4. 전산망 마비로 피해 속출...국가배상 어떻게 될까
5. SI업계·전문가 "풀리지 않는 의문점", 뭐?
2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전국 행정 전산망 장애는 '시·도 새올 행정시스템'에 접속하는 GPKI 인증시스템 장비가 오작동하면서 발생했다. GPKI 인증시스템은 공무원들이 새올에 로그인할 때 인증서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서버 등을 점검·분석한 결과 인증시스템의 일부인 네트워크 장비(L4스위치)에 이상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지난 18일 새벽 장비 교체 후 서비스를 정상 재개했다. 그러나 네트워크 장비 오작동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현행 국가배상법상 국가는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공무원의 고의와 과실, 위법성을 입증하는 것이 국가배상 소송의 핵심이다.
이번 사태로 국민들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정부의 과실로 전산망 장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 '새올'과 온라인 민원 서비스 '정부24'가 복구된 20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에 민원서류 정상 발급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3.11.20 mironj19@newspim.com |
유사한 사례로는 지난해 10월 발생한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으로 시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있다.
시민 6명은 카카오가 데이터센터 관리를 부실하게 해 경제 활동이 침해되고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6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패소했다.
1심은 지난 8월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카카오톡 등 서비스 중단으로 인해 원고들에게 사회 통념상 수인한도를 넘는 정신적 고통이 발생했음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대법원은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2017년 전산 장애로 피해를 본 일부 투자자들에게 빗썸 운영사가 1인당 최소 8000원에서 최대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1심은 "회사 측이 전산 장애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 통념상 합리적으로 기대 가능한 정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빗썸 측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원고들은 전산 장애로 원하는 가격에 매도 주문을 할 수 없었다는 상실감을 겪었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법원 로고 [사진=뉴스핌DB] |
법조계는 소송을 제기하는 쪽에서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손해를 입증해야 하는 만큼 국가배상 소송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배상 책임을 끌어내기도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구체적인 피해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대표변호사는 "예를 들어 증권사 전산 장애로 주식을 제때 팔지 못했다면 손해액이 분명할 수 있고 개인정보 유출 사고라면 정신적 손해가 인정되기도 하지만 단순히 서류를 발급하지 못했다고 해서 재산상 손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KT는 과거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와 관련해 보상안을 내놨다"며 "기업의 과실로 인한 경우 기업의 이미지를 고려해 먼저 보상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부는 그런 부분도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송성현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도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 측에 입증 책임이 있는데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국가의 고의·과실과 위법성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박진식 법무법인 비트윈 변호사는 "정부의 과실이 무엇인지도 규명이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경고 차원에서 그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입신고 민원 등은 정부가 확정일자를 소급해 준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재산적 손해액이 얼마인지 밝히는 것도 문제"라며 "정신적 고통이 인정되더라도 배상액은 미미한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2004년 3월 충청지역에 내린 기습적인 폭설로 장시간 고속도로에 고립된 차량 운전자 등 시민들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008년 최종 승소했으나 1인당 위자료는 고립됐던 시간에 따라 12시간 미만 35만원, 12~24시간 40만원, 24시간 이상은 50만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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