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추징금 언제 납부하실 겁니까?", "자네가 좀 납부해주라."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짓밟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는 등 수많은 죄를 저질렀음에도 생전 사과 한 마디 없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는 결국 죽어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됐다.
최근 교보자산신탁이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공매대금 배분처분 취소소송이 원고 패소로 확정되면서 전씨의 사실상 마지막 추징금이라 불리는 55억원이 국고 환수 절차를 밟게 됐다.
배정원 사회부 기자 |
전씨는 지난 1997년 내란·뇌물수수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을 확정받았다. 전씨가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자 검찰은 '전두환 미납추징금 집행팀'을 꾸리고 지난 2013년 전씨 일가의 오산시 임야 5필지 등을 압류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부동산 매각 후 추징금 명목으로 75억6000만원을 배분했다.
그러자 전씨 일가와 부동산 신탁 계약을 체결해 해당 임야를 관리해오던 교보자산신탁은 5필지 중 3필지 몫에 해당하는 55억원의 공매대금 배분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한 뒤 상고를 포기했다.
이번 판결로 전씨의 추징금 2205억원 중 1337억원(60.6%)이 국고로 환수됐다. 여전히 미납 추징금 867억원이 남아있지만 이번 환수를 사실상 마지막이라 부르는 이유는 전씨가 지난 2021년 11월 사망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당사자가 사망하면 추징금 집행은 중단된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지난 2020년 추징금 미납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상속 재산에 대해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 3법'(형법·형사소송법·공무원범죄몰수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중이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이미 사망한 전씨의 상속 재산을 추징하려면 소급입법이 적용돼야 한다. 헌법상 소급입법은 금지돼 있지만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있을 때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즉, 갈 길이 멀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특히 지난 1995년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은 소급입법 허용의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소급입법 허용과 관련해 "기존의 법을 변경해야 할 공익적 필요는 심히 중대한 반면 그 법적 지위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전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그 죗값을 다 치르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추징금 납부도 거부한 채 호의호식하며 살던 전씨는 통일을 이룬 조국의 모습이 보고 싶다며 파주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으나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이뤄지지 못했다.
전씨의 미납 추징금 867억원도 국가가 모두 환수할 수 있도록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죽어서도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해 우리 사회의 정의가 바로 세워지길 바란다. 전씨는 떠났어도 추징금 867억원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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