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잉공급 우려에 발전량 제어…원전까지 동원
비용 문제로 ESS 활용 애로…화재사고 후유증 여전
ESS 시장 24배 성장 예측…미국·중국 등 적극 투자
출력제어는 사실상 손해…ESS 보급 적극 확대해야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무언가의 공급이 차고 넘칠 때 가장 현명한 해결 방법은 초과분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 쓰는 것이다. 생산량을 줄이는 것으로는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 손해보는 일이다.
김기랑 경제부 기자 |
겨울을 지나 서서히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전력 당국은 남아도는 전력의 발전량을 두고 골치를 앓고 있다. 봄철은 냉·난방이 모두 필요하지 않은 계절이다. 특히나 올해 봄철의 전력 수요는 역대 최저 수준일 것으로 예측돼 넘치는 공급량은 더욱 처치곤란이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9일 '봄철 전력수급 특별 대책'을 발표했다. 석탄단지 운영 최소화 등의 선제적 안정화 조치를 먼저 시행한 뒤, 이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일부 원전의 점검 일정을 앞당겨 가동을 잠시 중단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특별 대책을 발표하면서 산업부는 에너지저장장치(ESS)의 활용을 두고는 난색을 표했다. ESS에는 많은 금액이 들기 때문에 차라리 발전원별로 출력 제어를 하는 편이 비용 측면에서 훨씬 낫다는 것이다.
ESS는 전력을 저장해 필요한 때에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이다. 전력 수요가 높을 때나 공급이 부족할 때 ESS에 저장된 양을 활용함으로써 전반적인 공급 안정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태양광·풍력 등 날씨에 따라 편차가 큰 신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해소하는 데에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
아울러 ESS는 미래의 대표적인 먹거리로도 손꼽힌다. 에너지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ESS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21년 110억달러에서 2030년 2620억달러로 약 24배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도 ESS 시장 육성에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10월 'ESS 산업발전 전략'을 내놓고 오는 2036년까지 미·중과 함께 세계 3대 ESS 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그렸다. 다만 국내 ESS 시장은 정부의 이런 계획과는 전혀 발맞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SS는 지난 2018년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힘입어 크게 늘어났던 바 있다. 하지만 설치량과 비례해 화재 사고가 다수 발생하면서 시장은 즉각 움츠러들었고, 아직까지 유의미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유사시 원전 가동을 잠시 멈춰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산업부의 대책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전임 정부와 정면으로 대치된 '친원전'을 표방하며 앞으로도 원전 비중을 점차 늘려갈 것을 공언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원전을 멈춰 세운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발전원 중 원전의 발전량이 석탄 다음으로 높은 만큼 출력 제어의 효과가 크다는 설명은 그럴 듯하지만, 이렇듯 전력 계통망에서 기껏 비중을 높여놓은 원전의 공급을 줄이는 것은 딱 줄인 만큼의 손해를 본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해당 분량을 고스란히 저장할 수만 있다면 전력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는 여름·겨울철에 유용히 쓰였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산업부는 ESS에 소모되는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설치를 적극 추진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시장 등을 신중히 관찰하며 점진적으로 확충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불과 10여년 밖에 남지 않은 '세계 3대 ESS 산업 강국'을 달성하기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다. 전력 공급의 효율 극대화와 강대국에 뒤지지 않는 미래먹거리 육성 등을 모두 고려한 정부 차원의 새로운 도약점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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