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물가변동 배제특약' 손봐야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특수성 인정해 동반성장해야
[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공사현장 원가율이 치솟으면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건설사가 계약기간에 맞춰 공사를 하고도 원가 부담에 이익은커녕 되레 손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특히 발주처가 계약 조건으로 요구한 '물가변동 배제특약' 조항이 뜨거운 감자다. 물가변동 배제특약이란 시공사가 착공 후 물가변동으로 추가 공사비가 들어도 발주처에 요구할 수 없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동훈 부동산부 차장 |
이 같은 문제로 최근 쌍용건설이 판교 신사옥 발주처인 KT에 추가 공사비 171억원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KT는 공사비를 추가로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채무부존재 소송으로 맞대응한 상태다. 양측이 국토교통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신청을 통해 원만한 협의도 기대됐으나 KT가 법정 분쟁으로 끌고 가면서 쌍용건설이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KT는 이번 협상 차제가 자사에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발주처 '갑질' 논란에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데다 불리한 결과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쌍용건설 이외에도 공사비 증액과 관련해 한신공영, 현대건설 등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쌍용건설과의 공사비 마찰에 끌려 다닐 경우 다른 사업장에도 여파가 적지 않다고 판단한 듯 하다. 계약서에 '물가변동 배제특약'이란 든든한 조항을 명시한 데다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질 경우 최소 5년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도 빠르게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간 이유로 해석된다.
이처럼 발주처가 물가변동 배제특약 조건을 계약서에 명기한 만큼 법적으로 추가 공사비를 줄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KT는 2011년 민영화가 됐으나 준공기업으로 인식되는 국내 대표적인 통신기업이다. 전국 모든 전화국 건물과 부지의 주인인 '갑 중 갑'이다. 그런만큼 상생 경영에도 공을 들인다. 매년 파트너사 200여개 기업 대표를 초청해 역량 강화와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지난해까지 9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 상생협력이 기업 경쟁력 강화에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상생협력을 강조한 KT라는 점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문제를 보다 원만히 풀어갈 필요는 있다. 쌍용건설이 요구한 171억원 모두는 아니더라도 원가 상승에 대한 이유를 협상 테이블을 통해 듣고, 건설업계의 현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 기획재정부와 국토부가 발주기관들이 계약서에 일방적으로 추가하고 있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 조항이 국가계약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KT와 쌍용건설간 마찰이 민간 계약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은 공공과 민간에서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원가율이 낮아진다고 남은 공사대금을 시공사가 발주처에 돌려주지 않는다거나, 시공사가 원가율 흐름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벌어진 코로나19 여파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등으로 발생한 물가상승은 예측 범위를 벗어난다. 이 때문에 시기적인 특수성을 감안하고 동반성장이라는 사회적인 화두를 깊이 생각해 물가변동 배제특약보다 상생협력을 우선해 해결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leed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