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폐지 속도에 우려…혁신본부 기능 위축
국가재정법 개정 필요…야당 반응은 부정적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정부가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 조사 폐지에 속도를 내지만 순기능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예타 심사를 해왔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 역할도 위축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4년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표된 '연구개발(이하 R&D)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폐지'에 대한 세부 추진방안으로 '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 투자·관리 시스템 혁신방안'을 제8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최종 의결했다고 4일 밝혔다.
[서울=뉴스핌]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8일 오전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인근 식당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자간담회' 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4.05.08 photo@newspim.com |
1000억원 미만의 모든 신규 R&D 사업은 일반적인 예산편성 과정을 통해 추진된다. 과기부는 500억~1000억원 규모의 신규사업 착수는 예타 폐지 전보다 약 2년 이상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1000억원 이상의 기초·원천연구, 국제공동연구 등 연구형 R&D 사업은 짧은 예산 심의기간 중 심도 있는 검토가 어려운 점을 고려해 예산요구 전년도 10월에 사업추진계획을 미리 제출받아 민간 전문가 중심의 사전 전문검토를 진행한다. 신규 R&D 사업의 당락결정이 아닌 기획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된다.
과기부는 R&D 예타는 2008년 처음 시작된 이후 16년만에 폐지된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과학기술현장에서는 예타 폐지 자체만으로는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우려되는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앞서 과기부는 2022년 9월 국가연구개발사업 예타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예타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높이는 법 개정안을 추진한 바 있다. 1000억원 미만의 경우, 예타를 면제받을 수 있는 방안이었다.
정치권에서도 R&D 예타 적용 규모를 1000억원으로 상향하는 방법을 추진해 왔다. 다만 사실상 이번 방안으로 예타를 폐지하는 등 이례적인 방안을 정부가 선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예타의 순기능을 정부가 떨어뜨리는 것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타당성을 미리 따져 대규모 재정의 투입이 낭비되는 것을 막는 제도가 바로 예타 제도이기 때문이다.
1000억원 미만의 사업 중에는 타당성이 떨어지더라도 일부 예산을 삭감하고 조율할 경우, 재정 투입이 가능해지는 만큼 그동안 정부가 강조한 'R&D 다운 R&D'와는 정반대라는 지적이 들린다.
여기에 1000억원 이상 사업 심의의 경우, 사실상 과기부 혁신본부의 예타심의 조정 능력을 위축시키고 재정당국의 입김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뉴스핌DB] |
예타 폐지를 정부가 강조해도 곧바로 시행되기는 쉽지 않다. 국가재정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이종호 과기부 장관도 "이번 R&D 예타 폐지가 실제 적용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법' 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만큼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국회에서 초당적인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고 국회에 공을 넘겼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1000억원까지 예타 면제 기준을 높이는 부분은 공감이 가지만 예타의 순기능이 분명히 있다"면서 "재정당국이 R&D를 재단할 경우, 당장 효과를 내지 못하는 기초과학 연구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등 우려되는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biggerthanseoul@newspim.com